강원도 횡성 출생. 13세 때 서울에 올라와 저동에 있던 해시상회(海市商會)에서 일하며 이왕가(李王家) 미술제작소 출신 이원구(李元求)의 칠기공방에 입문하였다.
당시 공방에서는 차도구 · 문방구 등 여러 가지 칠기제품들을 생산하여 일본으로 수출하고 있어 어려서부터 다양한 옻칠공예 제작 경험을 쌓을 수 있었다.
1940년 제19회 조선미술전람회 공예부에 옻칠상자를 출품한 것을 계기로, 제21∼23회에 연속 입선하고 장려상을 받는 등 우수한 성적을 올렸다.
1955년 제1회 부산시문화상을 받았으며, 1964년부터 1980년까지 옻의 주생산지인 강원도 원주의 원주옻칠공예주식회사와 원주칠조합의 고문과 자문역을 맡아 원주옻칠의 보급과 좋은 칠 채취 · 가공에 기여하였다.
또한 1965년∼1976년에는 서울시 공예협동조합 회원으로 공예상품 개발과 전승활동을 활발히 하였으며, 1979년부터 1994년 타계할 때까지 한국나전칠기보호협회와 한국공예예술가협회 고문직에 있었다.
그 밖에도 전국 칠기인들에게 옻칠작업 강좌 및 비술의 전수, 옻나무단지 견학 등 옻칠문화 창달에 남다른 애착을 가지고 활동하였으며, 그의 업적을 인정받아 1988년 서울시 무형문화재(현, 무형유산) 칠장으로 지정되었다.
한편, 서울 종로구 조계사 입구에 옻칠공방을 두고 일본 · 대만 · 중국 등 동남아시아 칠기인들과 많은 교류를 하였으며, 오대산 상원사(上院寺), 합천해인사(海印寺), 양양낙산사(洛山寺) 등 전국 사찰의 불상과 불구들이 그의 손을 거치지 않은 것이 없다 할 정도로 사찰 유산의 보수와 재현에도 힘썼다.
별세 후 경기도 안성의 우상공원 묘지에 안장되었는데, 업계에서는 유일무이하게 옻칠 묘비를 세워 고인을 추모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