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웅선 ()

인물
해방 이후 연세대학교 문과대학장, 한국교육개발원 원장, 덕성여자대학교총장 등을 역임한 학자. 교육학자.
이칭
진암(晉菴)
인물/근현대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919년
사망 연도
1997년
본관
남양(南陽)
출생지
서울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목차
정의
해방 이후 연세대학교 문과대학장, 한국교육개발원 원장, 덕성여자대학교총장 등을 역임한 학자. 교육학자.
내용

서울 출생. 본관은 남양(南陽). 호는 진암(晉菴). 은행가인 홍헌(洪憲)의 장남이다. 1946년에 오기환과 결혼하여 슬하에 3남 1녀를 두었다. 1937년에 경상사범학교 연습과를 나온 후 경기공립사범학교 교유(敎諭:일제 때 중등학교의 교원)로 재직하다가 1948년에 문교부 편수관으로 임명되었다.

1963년 문교부 학무국장을 끝으로 문교부를 떠나 미국 테네시주 피바디(Peabody)대학에서 수학하였으며, 동대학에서 학부과정과 대학원 과정을 마치고 1964년에 동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1967년에 미국 워싱턴주 워싱턴(Washington)대학에서 교육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1968년에 연세대학교 문과대학 교수로 임명되고, 1980년 연세대학교 문과대학장을 끝으로 연세대학교를 사임한 다음, 같은 해에 한국교육개발원 원장으로 취임하였다. 1983년 한국교육개발원장 임기를 마치고 같은 해에 덕성여자대학교 총장으로 취임하였다.

또한 한국정신문화연구원 자문교수, 서울시교육발전위원회 위원장, 한국교육개발원 자문교수를 역임했고, 1994년부터는 한양대학교 석좌교수로 재임하였다.

그는 다정다감하여 후학들에게 허물없이 대하면서 인도하였고, 성품은 외유내강하여 40세가 넘은 나이에 만학의 꿈을 안고 교육행정직을 버리고 미국으로 유학하여 대학과 대학원의 석·박사 과정을 모두 마치는 무서운 결단력을 보여주었다.

상훈과 추모

1983년 국민훈장 모란장, 1991년 서울시문화상을 수상하였다.

참고문헌

『광복후의 신교육운동』(홍웅선, 대한교과서주식회사, 1991)
『한국교육이 추구하는 인간특성』 (홍웅선,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89)
『새초등교육과정』(홍웅선, 교학연구사, 1988)
『나의 교육학』(홍웅선, 교문사, 1988)
『교육과정신강』(홍웅선, 문음사, 1976)
『신교육과정의 연구』(홍웅선, 연세대 출판부, 1973)
• 항목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