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종록

  • 역사
  • 인물
  • 조선 전기
  • 조선 후기
조선 중기에, 황해도암행어사, 조도사, 직제학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 연길(延吉)
  • 유촌(柳村)
인물/전통 인물
  • 관련 사건정여립의 난
  • 본관남양(南陽, 지금의 경기도 화성)
  • 사망 연도1593년(선조 26)
  • 성별남성
  • 주요 관직제용감정(濟用監正)|황해도암행어사|조도사(調度使)|직제학
  • 출생 연도1546년(명종 1)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김용국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조선 중기에, 황해도암행어사, 조도사, 직제학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남양(南陽). 자는 연길(延吉), 호는 유촌(柳村). 승지 홍형(洪泂)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경력(經歷) 홍언광(洪彦光)이고, 아버지는 좌참찬 홍담(洪曇)이며, 어머니는 현감 조익수(曺益修)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567년(명조 22) 사마시에 합격하여 생원이 되고, 1572년(선조 5) 생원으로 별시문과에 을과로 급제한 뒤 예문관검열이 되었다. 이어 삼사(三司)의 여러 관직을 거쳐, 1583년 병조정랑이 되었다.

1589년 정여립(鄭汝立)의 모반사건 때 여립의 조카 정집(鄭緝)의 문초에서 그의 이름도 거론되어 국문을 받고 구성으로 귀양갔다. 뒤에 풀려나와 제용감정(濟用監正)이 되었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이조정랑 신경진(辛慶晉)과 함께 도체찰사 유성룡(柳成龍)의 종사관으로 각 진영의 연락과 군수품 공급의 일을 맡았다.

같은 해 곽산에서 구성으로 들어가 그 곳 관민의 협조를 얻어 많은 양곡을 정주·가산 등지로 수운하여 군량공급에 크게 공헌하였다. 뒤에 황해도암행어사·조도사(調度使)를 거쳐, 직제학에 이르렀다. 뒤에 이조참판에 추증되었다.

참고문헌

  • - 『선조실록(宣祖實錄)』

  • - 『국조방목(國朝榜目)』

  • - 『사마방목(司馬榜目)』

  • - 『성호문집(星湖文集)』

  • - 『동주집(東洲集)』

  • - 『서애집(西厓集)』

  • -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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