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남양(南陽). 대몽전쟁기의 반역자 홍복원(洪福源)의 손자로, 홍다구(洪茶丘)의 아들이다.
홍복원과 홍다구의 뒤를 이어 원나라에서 무인으로 출세하여 요양행성(遼陽行省)의 우승(右丞)으로 있으면서 본국을 여러 가지로 모해하였다.
1298년(충렬왕 24) 요양행성의 우승 아리회(阿里灰), 좌승 양염룡(楊炎龍) 등과 함께 파견되어 와서 충선왕비인 조비사건(趙妃事件)으로 시중 조인규(趙仁規)를 국문하였으며, 고려가 관직명을 고친 것을 고자질하여 이를 환원시키게 만드는가 하면, 원나라의 황태후가 절을 짓는 데 백두산의 재목을 벌채, 수송하게 하는 등 고려를 크게 괴롭혔다.
1309년(충선왕 1) 왕이 국법을 어기며 폭정을 자행한다는 일로 원나라의 중서성(中書省)에 무고하였다가, 충선왕이 보낸 고려의 환자(宦者) 방망고태(方忙古台)가 흥성궁(興聖宮)에 입시하여 황태후에게 사실을 직고(直告)함으로써 도리어 장형(杖刑)에 처하여져 조주(潮州)로 유배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