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후기에, 상의원판관, 안산군수, 장례원사평, 면천군수, 청주목사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1629년 상의원판관·안산군수를 거쳐, 1631년 장례원사평이 되고, 이듬해 면천군수·청주목사를 역임하였다. 1633년 예천군수가 되고, 1636년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왕을 호종하려 하였으나 노부모 봉양을 위해 형제 중 한 사람이라도 전쟁터에 나오지 말도록 하라는 왕의 명으로 돌아왔다.
그 뒤 남양부사를 역임하였다. 1644년 광주부윤(廣州府尹) 재직 중에는 흉서(凶書) 8장(張)을 발견하고 상소하여 이를 처리하였다.
1646년 해주목사를 지냈으며, 1648년 수원부사를 거쳐, 1650년 한성우윤·좌윤을 차례로 거쳤다. 숙종 때 이조판서에 추증되고, 아홉 고을을 다스렸으나 백성들을 구제하고 이들의 교육을 진흥시키는 데만 힘썼다. 시호는 충정(忠靖)이다.
참고문헌
- 『인조실록(仁祖實錄)』
- 『숙종실록(肅宗實錄)』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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