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남양(南陽). 자는 질보(質甫). 아버지는 동지돈녕부사 홍희(洪喜)이며, 어머니는 좌찬성 구사맹(具思孟)의 딸이다. 박지계(朴知誡)의 문인이다.
인조와 이종사촌 형제로서 형 홍진도(洪振道), 외삼촌 구굉(具宏), 신경진(申景禛) 등과 모의하여 1623년 인조반정에 적극 가담하였다. 이 공으로 정사공신(靖社功臣) 3등으로 남창군(南昌君)에 봉하여졌다. 종부시주부(宗簿寺主簿)를 비롯하여 한성부좌윤·부총관 등을 역임하였다.
1629년 상의원판관·안산군수를 거쳐, 1631년 장례원사평이 되고, 이듬해 면천군수·청주목사를 역임하였다. 1633년 예천군수가 되고, 1636년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왕을 호종하려 하였으나 노부모 봉양을 위해 형제 중 한 사람이라도 전쟁터에 나오지 말도록 하라는 왕의 명으로 돌아왔다.
그 뒤 남양부사를 역임하였다. 1644년 광주부윤(廣州府尹) 재직 중에는 흉서(凶書) 8장(張)을 발견하고 상소하여 이를 처리하였다.
1646년 해주목사를 지냈으며, 1648년 수원부사를 거쳐, 1650년 한성우윤·좌윤을 차례로 거쳤다. 숙종 때 이조판서에 추증되고, 아홉 고을을 다스렸으나 백성들을 구제하고 이들의 교육을 진흥시키는 데만 힘썼다. 시호는 충정(忠靖)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