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로는 진(晉)나라 때의 전원시인 도잠(陶潛)이 지은 「귀거래사」를 본받아 「화귀거래사」를 지었다. 화작(和作)이기 때문에 운의 사용이나 단락의 설정에 있어서는 「귀거래사」를 철저히 답습하면서, 자신의 심회를 노래하고 있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돌아가자, 도잠이 옛날에 돌아갔거니 나도 또한 돌아가리. 해자(隍 황)의 사슴을 얻은들 무엇이 기쁘며, 새옹(塞翁 ; 국경지대에 사는 늙은이)이 말을 잃은들 무엇이 슬프랴. 불나방이 불에 덤벼들어 제 죽을 줄을 모르고, 망아지가 틈(隙 극)을 지남과 같은 빠른 세월을 쫓을 수 없네. 손잡고 친하자고 맹서하더니 머리도 채 돌리기 전에 다 틀려지누나. 돌아가자, 노자가 노닌 데를 물어보자. 쓰임은 무용(無用)을 기(期)하고, 구함은 구함 없음에 지나지 않는 것, 나비 날개 됨이야 기쁘거니와, 오리 다리를 잇는 것은 걱정거리라 그윽한 방에서 흰빛을 보고, 좋은 밭에 신령한 단(丹)을 심자. 그림자를 잡음이 곡두(幻 환)요, 각주구검(융통성 없이 현실에 맞지 않는 낡은 생각을 고집하는 어리석음)은 어리석은 일이라. 못난 재목이 제 목숨 보전한다. 신구(神丘)의 깊은 구멍에 몸을 편히 할 것이라. 공명은 천명을 기다릴 일이요, 늙마엔 돌아가 쉬어야 하리. 뜬구름 자취 없이 떠가는 대로, 마른 뗏목 물에 둥실 떠 흐르듯이.”
이인로는 「화귀거래사」에서 자성(自性 ; 본성)을 억눌러가며 벼슬하기를 거부하고 전원으로 돌아 간 도잠과 무위(無爲)를 가르친 노자의 뜻에 동감하면서도, ‘공명은 천명을 기다릴 일’이라 하여 공명에 대한 소망과 여의하지 못함을 드러내고 있다. 또 차고 빔(盈虛 영허)이 때가 있고, 인위로 강제할 수 없는 세상사에 대한 관조적 태도를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