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1년 기초조사를 하였고, 1956년 10월 청진력사박물관에서 발굴조사하였다. 이 일대는 고분을 비롯한 동점(銅店: 銅鑛) 등이 있었던 곳이다.
용동 입구의 속칭 ‘궐리터’를 지나면 고분군에 이르게 된다. 동점은 갱도가 상당히 깊어 세밀한 조사를 하지 못하였으며, 어떠한 사람들이 채광하였는지도 밝히지 못하였다.
이 고분군은 용동마을을 관통하는 도로변에 있는데 한변의 길이가 5∼8m에 달하는 방형 돌무지무덤이고 높이는 2.3∼2.5m이며 동남향이다. 용동마을 산록경사면에도 고분이 산재하고 있는데 역시 동남향이다.
또한, 하고천변(下古川邊) 일대에는 수백기의 돌무지무덤이 줄을 지어 있었으며, 많은 돌무지무덤들은 파괴된 상태였다. 이 중 하고천 우안 남쪽에 놓인 속칭 ‘곰두대[熊山]’를 사이에 두고 그 동쪽 골짜기가 ‘애지느골[女眞谷]’이고 서쪽이 ‘오랑캐골[兀良哈谷]’로, 즉 송동(松洞)이다.
애지느골에 소재한 6기 중 3기를 1948년경에 초급중학교 학생들을 동원하여 무단 발굴하였던 돌무지무덤들이 위치하고 있다. 이들 발굴고분 중에 천개석(天蓋石)이 완전히 드러나 내부구조를 확인할 수 있었는데, 동서길이 240㎝, 남북길이 260∼280㎝이며, 묘실 내부는 회(灰)를 발랐고 남쪽에 너비 80㎝, 길이 150㎝의 연도를 갖추고 있었다.
이 곳에서 금제 태환(太鐶) 귀걸이와 청동제 과대장식품, 청동시저(靑銅匙箸)가 출토되었다. 또, 오랑캐골 좌우에도 4∼5기씩 군집한 돌무지무덤들이 있는데 그 중 1기에서 연도를 갖추고 있음을 확인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