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룡 하남둔 고분 ( )

고대사
유적
중국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화룡시(和龍市) 하남촌에 있는 남북국시대 발해의 벽돌무덤. 전축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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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중국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화룡시(和龍市) 하남촌에 있는 남북국시대 발해의 벽돌무덤. 전축분.
개설

화룡 하남둔고분은 하남촌 서쪽 가장자리에 있는 논에 자리하고 있다. 북쪽은 해란강과 접하고 있으며 나머지 3면은 하남촌고성(河南村古城)에 둘러싸여 있다. 북서쪽으로 약 4㎞ 떨어진 곳에 서고성(西古城)이 위치하고 있다. 하남촌에 거주하는 한 농민이 논을 채소밭으로 개간하면서 무덤과 함께 금제품이 발견되었다. 1971년 9월 길림성박물관, 연변조선족자치주전람관(延邊朝鮮族自治州展覽館, 現 延邊博物館), 화룡현문화관(和龍縣文化館) 등에서 조사하였다. 1981년 연변자치주 중점문물보호단위로 지정되었다.

내용

하남촌고성 중앙에서 남서쪽으로 약간 치우쳐 있는 곳에는 한 변 길이 120m의 네모모양〔方形〕담이 있다. 무덤은 담 한 가운데에 위치하며 동서쪽으로 나란히 배치되어 있는데, 동쪽의 것이 1호분, 서쪽의 것이 2호분이다. 둘 다 남쪽을 향해 있으며, 널방 사이의 거리는 4.50m이다. 무덤양식은 모두 벽돌무덤〔塼築墳〕으로서 무덤 구조와 크기는 2기가 거의 동일하다. 널방의 크기는 길이 2.40m, 너비 1.40m, 높이 40㎝이다. 널방 네 벽은 긴네모모양〔長方形〕의 푸른벽돌〔靑塼〕을 쌓아 만들었고 백회(白灰)로 틈새를 메웠다. 바닥에는 네모모양의 벽돌을 깔았다. 조사 당시 천장 부분은 이미 훼손되어 있었는데, 원래는 8개의 큰 판돌을 2층으로 덮었다고 하며, 그 위에 동서 28m, 남북 약 20m, 높이 2m의 봉토를 덮었다. 봉토 위에는 동서 방향으로 배열된 30여 개의 주춧돌이 남아 있었다고 한다. 무덤 앞으로 약 1m 정도 떨어진 곳에서는 구덩이가 하나 확인되었는데, 구덩이 안에서 벽화가 그려진 흙벽돌조각과 철제 고리와 같은 건물 장식 등이 쌓여 있었다.

무덤에서 출토된 유물은 다양하다. 1호분에서 금제 띠고리〔帶拘〕, 용머리장식, 금팔찌〔金釧〕, 금귀걸이, 은팔찌〔銀釧〕등의 유물이 출토되었으며, 2호분에서는 허리띠, 네모난고리, 안장모양〔鞍裝形〕장식, 칼자루장식, 칼집장식 등 금제품과 쇠칼, 숫돌 등이 출토되었다. 따라서 1호분의 주인은 여성, 2호분의 경우는 남성으로 판단되며, 두 무덤은 부부묘(夫婦墓)로 추정된다.

의의와 평가

하남둔고분이 하남촌고성에 인접해 있으므로 이 고분의 피장자는 하남촌고성에 거주하였을 것으로 판단된다. 한편 하남둔고분에서는 다양한 종류의 금제품이 대량으로 출토되었다. 이를 통해 무덤 주인이 높은 신분을 향유한 계층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당시 발해 장인이 지닌 높은 수준의 수공예 기술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가치가 있다고 평가된다.

참고문헌

『中國文物地圖集-吉林分冊-』(國家文物局, 中國地圖出版社, 1993)
『和龍縣文物志』(吉林省文物志編委會, 1984)
「和龍縣西古城及其附近渤海遺蹟調査」(嚴長錄,『博物館硏究』1984年 1期)
「和龍渤海古墓出土的幾件金飾」(郭文魁,『文物』1973年 8期)
집필자
정원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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