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9년 12월 8일부터 1940년 5월 3일까지 『동아일보』에 연재되었다. 이 작품은 당시 지식인 계층에 만연되었던 정신적인 풍조로서 퇴폐주의와 이에 대립하는 경향을 보인 일종의 애정소설이다.
식물학도 장시영과 음악도인 김경아는 금강산에서 서로 만나 사랑하는 사이다. 김경아는 성악을 공부하기 위하여 일본 유학을 거쳐 백만장자의 아들인 안상권의 후원으로 독일로 건너가 4년 만에 유명한 성악가가 되어 귀국한다. 그러나 장시영은 아버지의 사망과 이로 인한 가정의 몰락으로 중등실업학교의 교사로서 머물게 되지만, 식물연구에 정진한다.
귀국한 김경아의 활동과 명성·사교 앞에서 장시영은 거리감을 느낀다. 이때 장시영은 자기가 근무하는 학교 주인의 딸인 이영옥을 알게 되지만 그래도 김경아만을 생각한다. 안상권의 호의로 ‘예술가의 집’에서 호사스런 생활을 누리는 김경아는 끝내 안상권과 결혼을 결심하게 되지만 안상권이 형편없는 탕아임을 알고 떠나게 된다.
한편, 장시영은 학교 주인과 어머니의 사망으로 온갖 시련을 겪게 된다. 장시영은 그러한 어려움 속에서도 식물학연구에 정진하여 논문이 좋은 평판을 받게 됨으로써 고농(高農)의 조수가 될 뿐 아니라 자기 때문에 자살을 기도하였던 이영옥과 결혼하게 되며 일본 동경의 식물학회의 학술발표강연에 참가한다.
운명의 기복적(起伏的)인 대칭화(對稱化)로 이루어지는 이야기 가운데, 이 작품은 두 가지의 서로 다른 부류의 삶의 양상을 제시하고 있다. 그 하나는 김경아를 중심으로 한 이른바 ‘예술가의 집’에 모이는 김경아의 패트런 안상권, 기타 예술가 및 사교계의 유명인사들로서 퇴폐주의의 부류이다.
이들은 예술적인 자기완성보다는 외국을 드나들며 서구의 문물을 흡수하기에 급급하고 사치와 향락의 퇴폐적인 생활에 도취하는 속물근성의 인간들일 뿐 아니라 한국인이라는 자기인식 이전에 오히려 이를 경멸하려 드는 부류이다.
한편, 이들과 대칭적인 처지에 있는 사람들인 장시영으로 대리되는 부류는 가난 속에서도 성실한 삶을 누리고 타인에게도 유익한 일을 하려는 사람들이다. 또, 이 부류는 자신이 한국인이라는 긍지도 가지고 있다.
이와 같은 매우 대칭적이고 대조적인 부류의 삶을 제시함으로써 도덕적인 삶과 그렇지 못한 삶의 사필귀정적인 귀결의 윤리의식을 암시하고 있다. 요컨대, 건전한 삶과 불건전한 삶의 양상을 이원적으로 제기함으로써 진정한 삶이나 사랑의 실체가 어떤 것인가를 시사하려 한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