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구하

  • 역사
  • 인물
  • 조선 후기
조선 후기에, 호조판서, 동지경연사, 한성부판윤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 성징(聖徵)
인물/전통 인물
  • 본관창원(昌原)
  • 사망 연도1728년(영조 4)
  • 성별남성
  • 주요 관직좌부빈객|호조판서|동지경연사|한성부판윤
  • 출생 연도1672년(현종 13)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송준호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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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후기에, 호조판서, 동지경연사, 한성부판윤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창원(昌原). 자는 성징(聖徵). 황형(黃泂)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황신구(黃藎耉)이고, 아버지는 황건(黃鍵)이며, 어머니는 이문행(李文行)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705년(숙종 31) 알성문과에 병과로 급제하고 승문원에 들어갔으며, 1712년 지평·사서를 거쳐 이듬해 정언·부수찬·수찬·교리를 지냈다. 이어 충청좌도어사로 나가 천안군수 어유봉(魚有鳳)을 폄삭(貶削)하고 충주목사 김진옥(金鎭玉)을 포상하도록 주청하였다.

1716년 별견어사(別遣御史)가 되어 제주도에 다녀와서 굶어 죽은 제주도민을 치제(致祭), 조위(吊慰)하도록 하였으며, 진상품인 전복의 양을 3분의 2로 감해주도록 주청하여 실현시켰다. 또한, 기아 중에 있는 도민의 진대(賑貸)와 제주유생의 전시직부(殿試直赴)를 주청하였다.

그 뒤 헌납을 거쳐 1717년 이조정랑이 되고, 이듬해 부응교·사간을 거쳐 1719년 응교·승지·대사간을 역임하였다. 같은 해 경상좌도균전사가 되었으나 자신이 전 균전사 윤헌주(尹憲柱)를 탄핵하였기 때문에 나갈 수 없다 하여 사직하고 이듬해 대사성이 되었다.

1721년 대사간으로 있다가 노론 4대신이 김일경(金一鏡)의 탄핵으로 유배될 때 파직되었다. 1724년 영조가 즉위하여 노론이 집권하자 다시 대사성이 되고, 이듬해 호조참판·대사헌·한성부우윤, 1726년 예조참판·도승지·좌부빈객·호조판서를 역임하고, 이듬해 동지경연사·호조판서·한성부판윤을 역임하였다.

참고문헌

  • - 『숙종실록(肅宗實錄)』

  • - 『경종실록(景宗實錄)』

  • - 『영조실록(英祖實錄)』

  • - 『국조방목(國朝榜目)』

  • - 『포암집(圃巖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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