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권 6책. 필사본. 필사자와 필사 연대는 미상이다. 그러나 정조의 어제서(御製序)로 보아 1790년(정조 14) 이후에 수명(受命), 간행된 것으로 추측된다.
책 이름을 ‘황극편’이라 한 것은 황극(皇極 : 편파가 없는 중정의 길)만이 붕당정쟁을 없앨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다. 제1책은 동서분당을, 제2책은 동서분당에서 남북으로 분당된 것을, 제3책은 서남분당·대소북분당·노소분당을, 제4∼6책은 노소분당을 다루고 있다.
제1·2책의 동서분당은 심의겸(沈義謙)과 김효원(金孝元)의 대립에서 시작되었고, 제2책의 남북대립은 기축옥사 때부터 분당되었고, 대소북의 분당은 1601년(선조 34) 북인 이산해(李山海)·홍여순(洪汝諄)의 관작을 추탈하고 의인왕후 박씨(懿仁王后朴氏)가 죽고 1602년 김제남(金悌男)의 딸을 왕비로 맞아들인 이후부터 싹트기 시작했다고 되어 있다.
제3책의 서남분열은 1675년(숙종 1)에 장령 남천한(南天漢), 정언 이수경(李壽慶) 등이 송시열(宋時烈)을 비방한 장계를 올린 뒤부터 노소분당이 싹트게 되었다고 하였다.
즉, 서남인의 분쟁이 격화된 것은 1680년 경신대출척으로 남인이 대거 살육되고, 그 이듬해 생원 박성의(朴性義) 등 70여명이 상소하여 이이(李珥)는 선문(禪門)에서 종사(從事)하고, 성혼(成渾)은 국난을 외면하고 피한 인물이라 하면서 문묘종사를 반대하면서부터 격화되었다고 하였다.
제4책에는 1716년에 윤선거(尹宣擧)의 문집을 훼탄하고, 윤선거·윤증(尹拯) 부자의 선정(先正)의 칭호를 금하게 하자 오명관(吳命觀) 등이 윤증을 변무하는 소를 올리는 것 등이 노소분당을 심화시키는 과정이라고 하였다.
제5책은 1721년(경종 1) 왕의 이복동생(뒤의 영조)의 대리청정 문제를 둘러싼 노론·소론의 분쟁을 다루었고, 제6책은 노론 4대신의 피화사건(被禍事件)을 둘러싼 문제와 그 뒤처리 내용이 다루어져 있다.
이 책의 근본 취지는 이준경(李浚慶)의 ‘파붕당지설(破朋黨之說)’을 내용으로 하고 있다. 국립중앙도서관에 있다. 한편, 그 후속으로 보이는 1권 1책의 ≪황극편≫이 규장각도서로 전한다. 여기에는 영조 4∼48년까지의 노소분당론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책은 조선시대의 당쟁 사실을 일목요연하게 축약한 것으로, 특히 당쟁으로 인한 파탄을 경험한 정조가 객관적으로 편찬하도록 한 것인 만큼 당쟁사 연구에 좋은 자료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