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창원(昌原). 호는 혜암(惠庵). 철종 때부터 고종 초기까지 지금의 서울 무교동에서 개업을 하면서 명성을 얻어 국민보건향상에 눈부신 업적을 남겼다.
그의 업적의 하나로 당시에 유행하였던 콜레라(vibrio cholerae)에 대하여 많은 연구를 하였고, 특히 이 병을 서곽란(暑霍亂)이라 하여 그 증세는 설사(泄瀉)·구토(嘔吐)·전근(轉筋)하고 설사 후에는 사지(四肢)가 차고 탈양자(脫陽者)로 죽는다고 하였다.
대표적인 저서로는 1855년(철종 6)에 초고본이 나온『부방편람(附方便覽)』 14권이 있고, 『부방편람』을 이해하기 쉽게 손질한 『의종손익(醫宗損益)』 12권이 1868년(고종 5)에 간행되었다. 또한, 1869년에는 『의방활투(醫方活套)』 1권을 간행하였다.
조선 말에 국력이 미약하고 의약 역시 미비하여 여러 가지 전염질환과 함께 국민의료에 저해를 가져왔을 때, 질병치료의 기본서인 『부방편람』·『의종손익』·『의방활투』를 집필하여 국민을 구하였다. 3권의 의약서적은 지금도 활용되고 있으며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