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고구려의 골내근현(骨乃斤縣)이었는데 신라의 영토가 된 뒤 경덕왕 때 황효현(黃驍縣)이라 개칭하여 기천군(沂川郡)의 영현(領縣)으로 하였다. 940년(태조 23) 황려현(黃驪縣, 또는 黃利縣)으로 고쳤고, 1018년(현종 9) 원주(原州)에 이속시켰다가 뒤에 감무(監務)를 두었다.
고종 때는 일시 영의현(永義縣)이라고도 하였다. 1305년(충렬왕 31) 이곳이 순경왕후 김씨(順敬王后金氏)의 고향이라 하여 여흥군(驪興郡)으로 격상시켰는데, 1388년(우왕 14) 황려부(黃驪府)로 또 격상시켰다. 그러나 공양왕이 즉위하면서 다시 여흥군으로 격하시켰다.
조선시대에는 태종이 즉위하자 원경왕후(元敬王后)의 고향이라 하여 여흥부로 승격시키고, 1413년(태종 13) 충청도의 안성 · 양지 · 음죽 등을 경기도에 이속시킨 뒤 도호부로 승격시켰다. 1469년(예종 1) 여주목(驪州牧)으로 승격된 뒤 큰 변동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