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여헌

  • 역사
  • 인물
  • 조선 전기
조선 전기에, 교리, 공조정랑, 울산군수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 유촌(柳村)
  • 헌지(獻之)
인물/전통 인물
  • 본관장수(長水)
  • 사망 연도미상
  • 성별남성
  • 주요 관직저작|박사|이조좌랑
  • 출생 연도1486년(성종 17)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윤용혁 (공주대학교,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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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전기에, 교리, 공조정랑, 울산군수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장수(長水). 자는 헌지(獻之), 호는 유촌(柳村). 영의정 황희(黃喜)의 현손이며, 황보신(黃保身)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황종형(黃從兄)이고, 아버지는 부사 황관(黃灌)이며, 어머니는 집의(執義) 강미수(姜眉壽)의 딸이다. 황맹헌(黃孟獻)의 아우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509년(중종 4) 별시 문과에 급제하고, 이듬해 저작·박사를 거쳐, 1511년 사가독서(賜暇讀書: 문흥을 일으키기 위하여 유능한 젊은 관료들에게 휴가를 주어 독서에만 전념케 하던 제도)한 뒤 이조좌랑을 역임하고 1515년 전적이 되었다.

이어 승문원 교리(承文院校理), 공조 정랑(工曹正郞)과 울산군수를 지냈으나, 1533년 사건으로 금산(金山) 옥에서 도망하였다가 다시 체포되어 곤장과 유배의 형벌을 받았다. 그러나 혐의가 있는 전 도사 정공청(鄭公淸)의 죄를 폭로하는 투서를 사헌부에 낸 뒤 양사(兩司)의 주청에 의하여 감형, 석방되었다.

문장과 글씨로 소세양(蘇世讓)·정사룡(鄭士龍)과 함께 당대에 이름이 있었고, 「죽지사(竹枝詞)」라는 작품은 명나라에서도 격찬을 받았다. 저서로 『유촌집(柳村集)』이 있다.

참고문헌

  • - 『중종실록(中宗實錄)』

  • - 『국조방목(國朝榜目)』

  • - 『상주읍지(尙州邑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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