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장수(長水). 자는 헌지(獻之), 호는 유촌(柳村). 영의정 황희(黃喜)의 현손이며, 황보신(黃保身)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황종형(黃從兄)이고, 아버지는 부사 황관(黃灌)이며, 어머니는 집의(執義) 강미수(姜眉壽)의 딸이다. 황맹헌(黃孟獻)의 아우이다.
1509년(중종 4) 별시 문과에 급제하고, 이듬해 저작·박사를 거쳐, 1511년 사가독서(賜暇讀書: 문흥을 일으키기 위하여 유능한 젊은 관료들에게 휴가를 주어 독서에만 전념케 하던 제도)한 뒤 이조좌랑을 역임하고 1515년 전적이 되었다.
이어 승문원 교리(承文院校理), 공조 정랑(工曹正郞)과 울산군수를 지냈으나, 1533년 사건으로 금산(金山) 옥에서 도망하였다가 다시 체포되어 곤장과 유배의 형벌을 받았다. 그러나 혐의가 있는 전 도사 정공청(鄭公淸)의 죄를 폭로하는 투서를 사헌부에 낸 뒤 양사(兩司)의 주청에 의하여 감형, 석방되었다.
문장과 글씨로 소세양(蘇世讓)·정사룡(鄭士龍)과 함께 당대에 이름이 있었고, 「죽지사(竹枝詞)」라는 작품은 명나라에서도 격찬을 받았다. 저서로 『유촌집(柳村集)』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