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명 황흥태(黃興泰). 경기도 파주 출신.
1919년 3·1운동 때 파주군 교하면 장터에서 만세시위운동에 적극 참여하였다. 1920년 6월경 최창섭(崔昌燮) 등과 은밀히 협의한 뒤 장날을 기하여 계속적으로 만세시위운동을 전개하였다.
그러나 이것이 여의치 못하자 상해 대한민국임시정부로부터 군자금 모집을 위한 지령을 받고 활동하기 시작하였다. 경기도 연천군 왕등면 강서리의 고안중(高安中)으로부터 70원을 조달받았고, 같은 해 7월 초순 다이너마이트로 위협하면서 다시 그 일대에서 60원의 모금을 확보하여 대한민국임시정부에 송부하였다.
1921년 6월 20일 동지 최창섭과 회합하고 다시 고안중으로부터 60원의 군자금을 모집하다가 붙잡혀 10월 경성복심법원(京城覆審法院)에서 징역 7년을 선고받고 복역하였다.
1980년 건국포장, 1990년 애국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