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장수(長水). 자는 숙공(叔貢), 호는 축옹(蓄翁)·현옹(玄翁)·신재(愼齋). 한성 출신. 영의정 황희(黃喜)의 현손이며, 황보신(黃保身)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종형(從兄)이고, 아버지는 부사 황관(黃灌)이며, 어머니는 집의(執義) 강미수(姜眉壽)의 딸이다.
진사로서 1514년(중종 9) 별시 문과에 급제하여 이듬해 홍문관정자가 되어 사가독서(賜暇讀書: 문흥을 일으키기 위하여 유능한 젊은 관료들에게 휴가를 주어 독서에만 전념케 하던 제도)한 뒤 홍문관직제학·동부승지 등을 역임했다.
1526년 강원도관찰사를 거쳐, 이듬해 대사성과 황해도관찰사, 1528년 이조참의, 그리고 이조참판에 올라 1530년 이행(李荇) 등과 함께 『신증동국여지승람』의 편찬에 참여하였다. 1532년 안동부사로 외보(外補)되었다가 갑자기 죽었다.
사람됨이 담론(談論)을 좋아하고 풍의(風儀)가 아름다워 귀공자 같았으며, 학문을 좋아하고 문장에 뛰어났으므로 갑작스러운 죽음을 많은 사람이 애석하게 여겼다 한다. 상주 옥동서원(玉洞書院)에 제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