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9년 5월에 경상북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예천군 용문면 구계리(醴泉郡 龍門面 九溪里)소재의 희령군 어사금은 태종이 시서예악(詩書禮樂)에 해박하고 음율(音律)에 능통하여 총애하던 여섯 째 아들 희령군 이타(李袉)[원문은 李礻+它]에게 내린 거문고이다.
희령군은 이를 ‘어사금’이라 이름하고 광주군 대왕면 율현리(廣州郡 大王面 栗峴里)에 정착하여 사당(祠堂)에다 가보(家寶)로 보관해 오다가 임진왜란, 병자호란에 사당이 소실되고 그 4대손 이함(李涵)이 상주(尙州郡 外西面)로, 5대손 이우춘(李遇春)이 예천(醴泉郡 知保面)으로 이주함에 따라 어사금도 옮겨졌다.
13대손 이병성(李秉誠)이 용문면 구계리에 들어와 살면서 희령군의 봉사손(奉祀孫)으로 임하게 되자 이곳에 사당을 짓고 어사금을 보관해 온 것이 오늘(18대손 李聖根)에 까지 이르고 있다.
오동나무와 밤나무를 붙여서 만든 울림통 위에 생사(生絲) · 무명 · 소가죽(牛皮)이 부수적인 재료로 쓰였다. 길이 120.3㎝, 폭 15.9㎝(15.5㎝), 두께 12㎝로 『악학궤범(樂學軌範)』에 기록된 거문고형태나 현재 생산되는 거문고보다 약간 작은 편이다.
뒷면에 홈 3개가 있고 “내사(內賜) 희령군(熙寧君)”이라는 음각이 있다. 이 음각과 하사에 관한 기록은 정사(正史)에 없다.
1988년도에 국가무형문화재(현, 국가무형유산) 악기장(樂器匠)의 기능보유자인 이영수(李永水)에게 의뢰하여 6줄과 술대 2개 및 소가죽 등, 일부 훼손된 부분을 개체(改替)하였으나, 울림통과 괘 5개 및 안족(雁足) 2개는 모두 예전 그대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