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42년(영조 18) 제작. 총고 84cm, 종구경 57.5cm, 두께 1.5cm. 1986년 경상북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종정에 일체쌍두의 용뉴(龍鈕)를 구비하고 있고, 종신 외면에는 상대와 하대, 그리고 4개소에 방형의 유곽과 4구의 보살상을 배치하고 있으며, 또한 종복(鐘腹)에는 주조연대가 확실한 명문이 새겨져 있다.
정상의 일체쌍두의 용뉴는 여의주를 물고 있는 형상이나, 몸체와 뻗은 발은 빈약하여 도식적이다. 동종의 상대(上帶)는 범자가 있는 방격문(方格文)을 돌려 장식하였으며, 하대인 구연대(口緣帶)는 상하 2단으로 하여, 아래쪽은 도식적인 운문(雲文)으로, 위쪽도 역시 도식화된 당초문으로 장식하였다.
상하대 사이의 종신 중간에는 2조의 돌기된 굵은 선을 돌려 종신을 상하로 구분하였다. 4개소의 방형 유곽내에는 돌출한 9유두를 갖추고 있으며, 유곽과 유곽 사이에는 보살입상 4구를 배치 · 장식하였다.
동종의 하부쪽에는 6개소에 명문이 주출(鑄出)되어 있는데, 주조연대 · 조성사찰 · 중량 그리고 주종에 관여한 사람들이 명기되어 있다.
그 내용을 살펴보면 ‘乾隆七年壬戌五月日 忠淸道丹陽南面 小白山 大興寺大鍾三百斤入山中碩德 大禪師涵信 老德笠會 綠化秩 片手海哲 片手楚符(건률7년임술오월일 충청도단양남면 소백산 대흥사대종300근입산중석덕 대선사함신 노덕입회 녹화질 편수해철 편수초부)’라고 되어 있다.
이 기록에 의해 1742년에 충청북도 단양의 대흥사에서 편수(片手) 해철(海哲) · 초부(楚符) 등에 의해 무게 300근의 동종이 주조되었는데, 대흥사가 폐사되면서 지금의 희방사로 옮겨온 것으로 본다. 전체적인 양식으로 보아 조선 후기 동종에서 보이는 수법과 양식을 따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