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신학 ()

개신교
개념
1970년대 한국에서 민중의 기독교적 해석에 근거해 형성된 신학. 개신교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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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요약

민중신학은 1970년대 한국에서 민중의 기독교적 해석에 근거해 형성된 신학이다. 민중신학은 서구 중심에서 탈피하여 토착적이고 실천적인 신학과 교회 운동을 모색하려는 한국의 독창적 신학 사상이다. 1970년대 민중신학에 대해 논의했던 신학자들은 1980년대에 민중신학과 마르크스주의의 세계관을 접목시키는 작업을 전개했다. 또한 ‘밥상공동체’와 같은 민중교회를 설립해 민중신학의 실천성과 현장성을 추구했다. 1990년대 이후 민중신학은 시민의 사회 현상에 주목하게 되었다. 민중신학은 한국의 사회적 맥락에서 시대적 고민을 담고 있는 독창적 한국 신학이라는 데 의의가 있다.

정의
1970년대 한국에서 민중의 기독교적 해석에 근거해 형성된 신학. 개신교신학.
개설

민중신학은 비민주적인 정치체제와 경제적 모순으로 인해 고난과 가난을 겪는 소외 계층을 민중의 개념에서 인식하고, 이러한 민중 이해를 기독교의 신학적 · 성서적 해석학의 틀을 통해 조명하고자 한다. 또한 민중신학은 서구 중심의 관념적인 신학 이론에서 탈피하여 민중의 역사적 · 사회적 · 문화적 경험을 매개로 토착적이고 실천적인 신학과 교회운동을 모색하려는 한국의 독창적인 신학사상이다.

연원 및 변천

1970년대에 유신독재체제와 경제제일주의로 빚어진 사회구조적인 모순을 직시했던 개신교 신학자들은 민중의 개념에 주목하고 정치적 민주화, 노동자의 인권, 그리고 민중의 생존권 보장을 위한 기독교 사회운동의 전개과정에서 당시의 한국적 사회 상황에 부합하는 민중신학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1970년대 민중신학 1세대로 불리는 현영학, 서남동, 안병무, 김용복 등은 민중에 대한 기독교 신학적 해석을 통해 민중신학의 기초를 놓았다.

1980년대에 이르러서 민중신학 2세대로 불리는 신학자들은, 한편으로는 마르크스주의의 세계관을 민중신학과 접목시키는 신학작업을 전개했고, 다른 한편으로는 민중교회의 설립들 통해 선교 중심의 대중교회와 성격을 달리하면서 민중의 고난에 동참하고 사회변혁을 추구하면서 민중신학의 실천성과 현장성을 추구하였다. 민중신학 2세대로 불리는 대표 신학자로는 강원돈, 박재순 등이 있다.

1990년대에 이르러 민중신학은 국내외적인 환경 변화로 인해 학계의 관심에서 멀어지게 된다. 국내적으로 정치적 민주화로 사회질서가 안정되고 경제성장을 통해 중산층이 형성되면서 학계는 민중보다는 시민의 사회현상에 주목하게 되었다. 또한 소련을 중심으로 한 동구 사회주의권의 몰락은 2세대 민중신학자의 입지를 좁혔다. 이후 김진호, 김경호, 최형묵 등과 같은 민중신학 3세대 학자와 목회자들은 1997년 국제통화기금 구제금융사태로 인한 경제위기와 신자유주의의 경제체제에서 소외된 실업자, 비정규직 노동자, 그리고 이주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한 신학적 사유와 교회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내용

민중신학이 학술용어로 정립된 것은 1979년부터이다. 그 해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가 주최하고 아시아기독교협의회가 후원하는 국제신학심포지엄 준비 과정에서 참석한 개신교 신학자들은 1970년대에 한국에서 새롭게 전개되고 있는 신학의 명칭을 논의한 끝에 민중신학이란 용어에 합의하였고, 이후 이 명칭이 학계에서 본격적으로 사용되었다. 1970년대에 민중신학의 단초를 마련한 대표 신학자들로는 안병무, 서남동, 현영학, 김용복 등이 있는데, 이들은 민중신학 1세대로 불린다.

현영학은 1973년 6월 「민중 속에 성육신해야」라는 제목의 글을 발표함으로써 민중신학의 가능성을 알렸다. 그 후 현영학은 민중문화운동, 특히 탈춤의 해학성에 담긴 민중의 한(恨)과 사회비판의 성격에 주목하여 신학을 전개했다. 민중신학의 학문적 성격을 처음 모색한 인물은 서남동이다. 그는 1975년 4월 「민중의 신학에 대하여」라는 논문을 발표했다. 이 글이 발표되기 전인 1973년부터 서남동은 민중신학과 관련된 주제로 강연을 했었다. 그리고 이를 논문으로 정리해 1975년 「예수 · 교회사 · 한국교회」라는 제목으로 발표했다.

그런데 그 해 4월 철학자 김형효가 「혼미한 시대의 진리에 대하여」라는 제목으로 보수적인 입장에서 서남동의 논문을 비판하였다. 「민중의 신학에 대하여」는 김형효의 비판에 대한 반론으로 쓰인 논문인 것이다. 이 과정에서 서남동은 민중신학의 기본 방향과 성격을 좀 더 체계적으로 정리하게 된다. 그 후 서남동은 신학의 핵심 주제를 민중으로 설정하고 사회과학적 성서해석학, 그리고 ‘두 이야기의 합류’라는 자신의 고유한 해석학을 통해 기독교의 민중사건과 역사가 한국의 민중사건과 역사와 합류하는 과정을 모색하였다.

안병무는 민중을 기독교 신학의 핵심 개념으로 논의할 수 있는 전거를 성서해석학을 통해 마련했다. 그는 「마가복음」에서 많이 사용되는 그리스어 오클로스(무리)에 주목한다. 그는 「마가복음」에서 이 용어는 주로 지배체제에서 고난과 억압을 당하는 가난하고 소외된 무리들이란 의미로 사용되었음에 주목했다. 안병무는 한국의 역사 속에서 오클로스의 용어에 해당하는 개념이 민중이라는 점에 주목했다. 또한 그는 기독교 신앙의 대상인 예수 자체도 민중으로 규정함으로써 예수의 구원사건을 민중해방의 사건으로 해석함으로써 국내외의 신학계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1980년대에 한국사회는 광주민주화운동을 위시한 군부독재에 대한 사회적 저항, 반미운동, 노동운동, 여성운동 등을 통해 새로운 변혁을 추구하고 있었다. 또한 기독교 신학계에서는 남미의 해방신학이 논의되기 시작했다. 이러한 사회적, 학문적 환경의 변화 속에서 2세대 민중신학자들은 마르크스주의 이념을 차용하면서 새로운 사회적 변화에 적응할 수 있는 민중신학의 가능성을 모색하게 되었다. 또한 민중교회는 선교중심의 대중교회와는 성격을 달리하면서 ‘밥상공동체’와 같은 민중중심의 교회공동체를 추구하였다.

1990년대에 이르러 한국 사회는 정치적 민주화와 경제성장을 통해 사회 안정을 찾게 되었고, 국제적으로 동구 사회주의권이 붕괴되면서 냉전시대가 종식되는 국면에 접어든다. 이러한 사회적 환경의 변화에 따라 민중신학도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된다. 민중의 개념에 내포된 정치적 억압과 경제적 소외의 측면은 정치적 민주화와 경제성장을 통한 물질적 풍요를 경험하게 되면서 그 의미가 약화되었고, 사회와 학계에서는 정치경제적 변화에 따라 형성된 ‘시민’, 또는 ‘시민운동’에 주목하게 되었다.

이러한 국내외적인 변화에 따라 민중신학의 논의는 약화될 수밖에 없었다. 특히 마르크수주의 이념을 민중신학과 접목하고자 했던 2세대 민중신학자들의 입지는 좁아질 수밖에 없었고, 민중신학자들 내부에서도 민중신학의 마르크스주의 이념의 수용과 관련해서 논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또한 사회적 변화에 따라 민중교회의 활동 영역도 위축되기에 이르렀다.

이후 민중신학은 민중신학회, 민중신학연구소,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 등의 3세대 민중신학자들에 의해 전개되고 있다. 이들은 정치적 민주화와 경제성장에도 불구하고, 신자유주의적 경제체제 틀에서는 여전히 민중으로 정의할 수 있는 소외된 자들이 존재하고 있다고 말한다. 즉, 실업자와 비정규직 노동자의 생존권과 노동권, 그리고 이주노동자의 인권 문제, 그리고 사회적 양극화 문제는 민중신학의 중요한 관심사이자 목회의 현장이라고 보는 것이다.

의의와 평가

민중신학이 지닌 의미는 무엇보다도 한국의 사회적 맥락에서 시대적 고민을 담고 있는 독창적인 한국 신학이라는 데 있다. 민중신학은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를 직시하고, 그 모순을 해결하려는 실천적 태도에서 형성되었다. 그리고 민중신학은 함석헌의 씨ᄋᆞᆯ사상, 민중문학과 문화, 그리고 민중의 고난과 사회변혁운동으로부터 신학적 자양분을 흡수하면서 사변 신학에서 탈피하여 실천적인 행동신학을 지향했다.

민중신학의 신학적 독창성은 서구 학계에서 주목을 받아 많은 민중신학을 주제로 한 학술 논문과 저서들이 많이 발표되고 논의되기도 했다. 그러나 민중신학은 정치적 · 경제적 소외 계층인 민중을 중심으로 논의를 전개하면서 이러한 민중의 사회학적 · 정치학적 실체성을 묻는 학문적 비판에 직면하기도 했고, 나아가 변화된 사회 환경에서 민중의 실체가 모호해짐에 따라 학문적 논의를 좀 더 심화시키기 어려운 한계를 보이기도 했다. 최근에 3세대 민중신학자들이 이러한 변화된 사회적 상황에 부합하는 민중의 실체를 다시 제시하면서 신학적 논의를 전개하고 있어 그 결과가 주목된다.

참고문헌

『한국기독교의 역사 III』(한국기독교역사학회 편,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2009)
『예수, 민중의 상징 민중, 예수의 상징』(권진관, 동연, 2009).
『예수의 탈춤: 한국 그리스도교의 사회윤리』(현영학, 한국신학연구소, 1997)
『1980년대 한국민중신학의 전개』(한국신학연구소 편, 한국신학연구소, 1990)
『민중신학의 탐구』(서남동, 한길사, 1983)
『민중과 한국신학』(NCC신학위원회 편, 한국신학연구소, 1982)
「21세기와 민중신학」(문동환, 『신학사상』109,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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