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1930년대 북만주 지역에서 김일성 등을 중심으로 항일 빨치산 활동을 하다가 소련군과 함께 입북한 후 정권을 장악한 정치 집단.
개설
설립목적
연원 및 변천
소련군정은 각 파벌간의 투쟁으로 인한 혼란을 조기에 수습하기 위해 김일성 옹립을 서둘러 1945년 10월 8일부터 ‘북조선 5도회의’를 소집했고, 10일부터 13일까지는 ‘조선공산당 이북5도 당 책임자 및 열성자대회’를, 14일에는 ‘김일성장군 환영 평양시 군중대회’를 개최했다. 이러한 일련의 행사를 통해 소련 군부는 김일성에게 힘을 실어주었고 이후 김일성은 정치적 입지를 마련하였다.
또한 김일성빨치산파는 권력을 장악하면서 군대 장악에 집착하였다. 빨치산출신 손종준, 최병열, 김준동, 박승철 등이 평양학원 설립에 주축이 되었으며, 김책 · 안길 · 강건(姜健) · 최용건 · 최충국(崔忠國) · 박영순(朴英順) · 오백룡(吳白龍) · 무정 · 박일우(朴一禹) · 주연(朱然) 등이 회합하여 군 창건을 준비하였다.
김일성은 북조선노동당의 창당으로 보다 많은 대중적 지지기반을 확보하였고, 이러한 여세를 몰아 1948년 제2차 당대회를 개최해 빨치산파, 소련파, 연안파, 국내파를 망라한 연합정부를 구성했다. 이어 그는 1950년 6·25전쟁을 통해 정적들을 제거하기 시작하였다. 그는 전쟁 패전책임을 빌미로 1950년에 무정을 제거했고 1951년 11월에는 소련파의 실력자 허가의를 제거했다.
김일성의 빨치산파들은 1956년 제3차 당대회에서 대거 등장하여 크게 부상하기 시작했다. 위원현황을 보면, 중앙 위원회의 정위원에는 11명이, 후보 위원에는 6명이 선출되었고, 6명의 최고위급 중앙 위원 가운데서는 4명이 빨치산 출신이었다. 중앙 위원회 위원인 11명의 빨치산은 서열순으로 김일성, 최용건, 김일, 박금철, 김광협, 최현, 유경수, 김경석, 이영호, 김창덕, 이송운 등이며, 중앙 위원회 후보 위원인 6명의 빨치산 출신은 석산, 오진우, 최광, 최용진, 김창봉, 서철 등이었다.
제3차 당대회가 끝난 지 채 2개월도 안 된 1956년 6월 1일부터 7월 14일까지 김일성은 10명의 대표단과 함께 소련과 동유럽의 9개국을 방문하여 경제 원조를 요청하였다. 김일성은 부재중에 연안파의 반대 움직임을 파악하고 모두 제거하였다. 1958년 2월 8일 조선 인민군 창설 10주년 기념 연설에서 김일성은 처음으로 인민군은 만주에서 전개했던 그의 빨치산 항일 무장 투쟁의 전통을 계승한 것이라고 선언했다. 1961년 9월에 열린 제4차 당대회에서 김일성은 오랫동안 그를 지지해왔던 옛 빨치산 동료들을 당과 정부, 그리고 군의 주요 요직에 등용하였다.
김일성의 빨치산들이 공공연히 지배 세력으로 부각된 것은 1961년 9월 11일부터 18일까지 개최된 제4차 당대회에서였다. 이 대회에서는 85명의 중앙위원회 위원들이 선출되었는데, 새로 선출된 57명 중에 25명이 빨치산 출신들로 구성되었고, 21명 정도는 사회주의는동청년동맹이나 조선인민군으로부터 새롭게 충원된 젊은 간부들이었다. 일부 빨치산출신이 아닌 사람들은 김일성의 동생인 김영주나 과거에 빨치산이었던 이제순의 친척 이효순처럼 빨치산들과 직접 가족관계로 연결되어 있거나 그들은 추종하는 사람들이었다.
기능과 역할
중앙 위원회 간부 선거의 경우는 그 정도가 더욱 심했다. 당대회의 마지막 날에 개최된 중앙 위원회 제1차 전원 회의에서 김일성이 위원장으로 선출되었고 최용건, 김일, 박금철, 김창만, 이효순 등 5명이 부위원장으로 선출되었다. 그리고 상임 위원회 정 위원11명, 후보 위원으로 4명이 각각 선출되었는데 김창만과 소련파 출신의 남일을 제외하고는 모두 빨치산 출신이거나 그들과 관련된 사람들이었다. 제4차 당대회는 김일성과 그의 빨치산들에게 새로운 시대를 열어 주었으나 빨치산들의 대대적인 권력 장악은 1960년대 말에 이르러 예상치 못한 문제점을 드러냈다.
현황
1968년 말에 이르러 김일성은 빨치산 출신 장군들의 지나친 권력 행사와 북한의 군사화가 안고 있는 폐단에 눈을 돌리고 그들을 제거하기 시작했다. 제일 먼저 대남 침투 공작의 실패에 대한 문책으로 연락국 총책 허봉학은 빨치산이 아닌 민간인 김중린으로 교체되었다. 이어 빨치산 출신의 고위 장군인 김광협, 김창봉, 최광, 이영호, 석산이 축출되었고, 이외에도 최민철, 정병갑, 김자린, 김창덕 등의 빨치산 출신 장군들도 제거되었다. 이들의 제거는 김일성을 중심으로 결합하여 평생 그를 뒷받침해왔던 빨치산들이 붕괴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의의와 평가
참고문헌
- 『북한의 당, 국가기구, 군대』(세종연구소 북한연구센터, 한울, 2007)
- 『조선노동당연구』(이종석, 역사비평사, 1995)
- 『북한인민군대사』(장준익, 서문당, 1991)
- 『남노당 연구』(김남식, 돌베게, 1984)
- 『한국전쟁과 노동당전략』(김점곤, 박영사, 19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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