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보위후원회 ()

정치·법제
단체
1949년 7월 15일 북한군대를 지원하고 군 가족을 도와주기 위해 결성된 후원조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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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1949년 7월 15일 북한군대를 지원하고 군 가족을 도와주기 위해 결성된 후원조직.
개설

김일성은 1949년 7월 15일 조국보위후원회를 결성하라는 지시를 하달하였고, 이 지시에 따라 1949년 8월 말 각 도·시·군·면에 이르기까지 2만 5천여 개의 조직이 결성되어 총 269여만 명의 회원이 가입하였다.

설립목적

조국보위후원회의 결성 목적은 인민군대를 지원하고 인민군대의 가족을 도와준다는 데 있었다. 1949년 9월 9일『북한정부수립 1주년에 관한보고』연설에서 김일성은 “전체 인민들은 인민군대와 경비대 보안대 등을 강화하기 위하여 전력량을 집중하며, 인민군대, 경비대, 보안대의 전사・하사・군관들의 가족들에 대한 전 인민적 원호사업을 일층 강화하고 조국보위후원회의 활동범위를 확장하며, 물심양면으로 인민군대를 강화하는 사업들을 전개하여야할 것입니다” 라고 하여 그 활동범위를 확대하여 지원 사업을 강력히 추진하도록 하였다.

연원 및 변천

북한은 인민유격대를 남한에 침투시켜 혼란을 조성하는 한편, 북한 인민을 군사훈련과 징집, 그리고 군 원호사업 등의 전쟁준비에 동원하였다. 먼저 북한 인민에 대한 군사훈련은 1948년까지는 만 17세부터 50세까지의 전 남성을 직장에서 일하면서 기초 군사훈련을 실시해 오다가 1949년 초부터는 한 주에 두 번씩 의무적으로 군사훈련을 받게 하여 다가올 군 확장과 총동원에 대비하였다.

1949년 이후 고급 중학교(한국의 고등학교) 이상의 모든 학교에는 배속장교를 배치하여 학생들에 대한 군사 훈련을 강화하고, 신검 대상이 되는 전 인민을 1949년 여름까지 신체검사를 완료하는 등 북한 인민이 병력동원에 대한 준비를 완료하였다. 전시 총동원령이 선포(1950년 7월 1일)되자 징집에서 제외되었던 이들까지도 모두 징집되었고, 징집연령 또한 낮아져서 17세부터 30세까지는 군에 입대시키고, 31세부터 50세까지는 군 노무자 및 군수산업공장으로 총동원하였다.

기능과 역할

김일성은 조국보위후원회로 하여금 군인 가족 지원으로부터 그 활동범위를 확대하여 물심양면으로 인민군대를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전쟁준비 지원 사업을 강력히 추진해 나갔다.

북한 인민은 남한 인민들을 구원하고 조국의 통일을 달성하기 위하여 인민군대의 무력을 강화하는데 총력을 다해야할 중요한 시기에 직면해 있다는 것을 강조하여 전쟁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인민군대를 강화, 지원하는 사업으로 비행기, 전차, 함선 구입을 위한 기금헌납운동을 대대적으로 실시하였다. 12월 말부터는 『애국채』라는 것을 대량으로 발행하여 조국보위후원회로부터 반강제적으로 인민들에게 구입하도록 하였고, 이 자금으로 북한은 인민군 장비의 현대화 및 군수공업의 자립성 강화에 투자하였다고 발표하였다. 또한 농민들을 이 운동을 참여시키기 위하여 소위 『애국미』라는 명목으로 곡식을 국가에 헌납하도록 하였는데, 1949년 말까지 총 4만 8천 4백여 가마가 헌납되었다. 이렇게 헌납된 ‘애국미’는 전쟁용 군량미 확보는 물론 군사장비 구입기금으로 사용하였다.

현황

김일성은 1949년 9월 9일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창립1주년을 맞이하여, 북한 국민들에게 행한 연설에서, “남조선에서 소위 국방군을 강화하여 동족상쟁의 내란을 야기시킬 준비를 진행하고 있다”라고 전쟁분위기를 강조하였다.

또한 인민군대에 보낸 후방 군인가족들에 대한 원호사업을 선전적으로 실시함으로써, 아직 인민군에 입대하지 않은 장정들에 대하여 군에 입대하도록 유도하였다. 당시 북한에 있어서 인민군에 대한 대우는 예외적으로서 병사들의 식사는 일반 직장의 간부급 식사보다 훨씬 좋았고, 인민군 소좌(소령)의 봉급은 2,300∼2,400원 정도로 정부의 국장이나 도 인민위원회 위원장과 동등한 대우를 받았다. 이는 전쟁을 1년 앞둔 군 확장과 사기를 위한 북한당국의 계획된 선전적 조치였다. 아울러 직장 및 농촌 단위로 17세부터 45세까지의 청장년들을 모아 청년훈련대를 조직하여 조국보위위원회의 통제와 지도하에 군사훈련과 체력단련을 실시, 장차 군사동원에 대비하도록 강조하였다.

의의와 평가

조국보위후원회는 애국미, 애국채라는 명목으로 인민들로부터 반강제적으로 쌀과 헌금을 헌납하도록 독려하여 인민군대를 강화하도록 하였다. 또한 청장년들을 군사동원에 용이하게끔 통제 및 군사훈련을 실시하고 전체 인민들에게는 조국해방전쟁 분위기를 고취시키는 선전사업을 실시하였다. 1950년 3월이 되자 남한에서 북침할 가능성이 높다는 유언비어를 유포하여 38선 접경지의 주민들을 모두 후방으로 철수시키는 등 전쟁준비 지원에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였다.

참고문헌

『북한인민군대사』(장준익, 한국발전연구원, 1991)
『6.25전쟁사 제1권』(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2004)
『남북한의 창군』(한용원, 오름, 2008)
집필자
양영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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