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도경비대는 사령부를 평양 역전에 설치하고 북한 전역의 주요 도시의 철도, 교량, 터널 등을 경비하는 한편, 정규군 편성에 대비하기 위하여 나남(羅南)과 개천(价川)에 각각 ‘철도경비대 훈련소’를 설치하고 대규모로 대원을 모집하여 충원시켰다. 이들은 장차 북한 정규군 건설의 중요한 모체가 되었다.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는 1946년 1월 11일 한만 국경과 38도선, 그리고 철도 등의 경비 임무를 수행하고 장차 정규군으로 전환시킬 목적 아래 본부를 평양에 둔 각 도별 철도보안대를 창설하였으며, 7월 13일에는 각도에 설치된 철도보안대를 통합하여 ‘북조선 철도경비대’로 개편하였다.
이때에 철도경비대 사령부는 평양에 위치하고 강계(江界)·양덕(楊德)·원산(元山)·함흥(咸興)·신포(新浦)·단천(端川)·성진(城津)·상삼봉(上三峰)·사리원(沙里院)·신성천(新成川) 등지에는 각각 1개 중대가 위치하고 있었다. 철도경비대는 사령부를 평양 역전에 설치하고 북한 전역의 주요 도시의 철도, 교량, 터널 등을 경비하는 한편, 나남(羅南)과 개천(价川)에 각각 ‘철도경비대 훈련소’를 설치하고 대규모로 대원을 모집하여 충원시켰다. 그 후 1946년 8월 15일 ‘보안간부훈련대대부’의 창설로 그 예하 기구로 편성되었다. 철도경비대와 보안훈련소는 몇 차례의 통합, 증·개편을 통해 정규사단의 모체로 변모해 갔으며, 1946년 11월 10일에는 철도경비대와 보안훈련소가 통합 개편되었다.
철도경비대를 해체 흡수하여 평양에 보안간부훈련 제3소를 설치하였고, 철도경비 13개 중대는 3개 대대로 개편하여 훈련 제3소의 예하 부대가 되었다. 당시 개천의 훈련 제1소를 개천사단 또는 제1사단, 나남의 훈련 제2소를 나남사단 또는 제2사단, 평양의 훈련 제3소는 철도경비사령부라고 호칭하기도 했다.
1947년 3월 철도경비대를 주축으로 편성되었던 평양의 훈련 제3소는 해체되어 본부는 훈련대대부 사령부로 통합되고 예하의 3개 대대는 종래의 철도경비 임무를 각 도 보안대에 인계하고, 3개 훈련소에 분산 배속되었다. 신병 훈련기관인 3개의 훈련소가 모두 철도경비대를 주축으로 증·개편되었는데, 이 3개 훈련소는 장차 북한 정규군 건설의 중요한 모체가 되었으며, 북한 전 지역을 3개 지역으로 분할 배치되었다.
철도경비대를 주축으로 하여 평양 개천을 중심으로 한 훈련 제1소는 서부 지역인 해주, 사리원, 강계, 신성천에 각 중대를 배치하였고, 함북 나남을 중심으로 한 훈련 제2소는 동북부 지역인 성진, 길주, 서천 상삼봉에 중대를 배치하였다. 그리고 함남 원산를 중심으로 한 훈련 제3소는 중동부 지역인 함흥, 신포, 양덕, 원산에 배치되었다. 이렇게 3개 광역으로 분할 배치된 각 훈련소에서는 신병을 대량 모집, 훈련하여 부대를 확장하기 시작하였는데, 이것이 바로 북한 정규군 건설을 위한 최초의 움직임이었다. 이 3개 훈련소는 곧이어 각 지역별로 정규 사단 및 여단으로 확장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