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1948년 12월 26일 학생군사훈련을 중등학교 이상의 학교에서 실시하기로 결정하였다. 그 준비작업으로서 우선 학교배속 장교요원을 중등학교의 체육교사 중에서 군사교관 희망자를 선발하여 남자는 태릉의 육군사관학교에, 여자는 서울사범대학훈련소에 각각 입교시켜 교육을 실시하고 졸업과 더불어 육군예비역 소위로 임관시켜 각 학교에 배속하였다. 그 후 학생군사훈련은 「학생군사훈련실시령」(대통령령 제57호, 1951.1.21)를 근거로 다시 시행되었다. 현재 학군단은 1961년 4월 25일에 창설되어 지속되고 있다.
학생군사훈련은 최초 1948년 12월 21일 학도호국대 간부훈련소에서 300여 명의 간부학생들을 1개월 단위로 훈련을 실시하면서 계속 간부요원의 훈련을 실시하여 2,400명을 양성하였다. 그리하여 1949년 2월 중 이들을 기반으로 학도호국단을 결성하였으며, 이어 대학은 이해 3월까지 결성 완료하였다.
학도호국단 창설은 정부수립과 더불어 안호상 초대 문교부장관의 구상을 정부가 정책으로 채택하여 이루어진 것으로, 전국 중·고등학교 이상의 학생에 대한 군사훈련이 체계화되어 실시되었다.
이에 따라 중·고등학교 이상의 학생에 대한 군사훈련이 시작되었으며, 훈련은 학교단위로 구식교련과 정신교육에 치중한 단편적인 훈련을 실시하는데 그쳤다. 그 후 6·25전쟁이 발발하자 각 학교의 배속장교들은 대부분이 지원 또는 소집에 의해 현역에 편입되었으며, 학생들도 대다수 학도의용군으로서 참전하거나 피난하면서 학생군사훈련이 자연 중단되었다.
그러나 전세가 악화되어 예비병력의 확보가 시급한 문제로 대두되자, 정부는 1951년 1월 21일 대통령령 제57호로 「학생군사훈련실시령」을 공포·시행하고 전국의 고등학교와 대학교에서 일제히 학생군사훈련을 실시하게 되었다.
이 훈련의 계획은 고등학교와 대학교 졸업예정자를 일률적으로 광주육군보병학교 및 육군예비사단에 입교시켜 10주간의 단기군사훈련을 실시하여 국군 간부요원을 확보하자는 것이었다. 이 훈련은 1954년 7월 10일부터 1955년 2월말까지 각 학교단위로 실시하였으나, 효율성이 없어 침체상태에 빠졌다. 그리하여 학생군사훈련을 활성화하기 위해 1961년 4월 25일 국방·문교부의 합의에 의하여 학군단(ROTC) 실시요강을 발표하였고, 전국 16개 종합대학에 학도군사훈련단을 설치하였으며, 미국의 학군 제도를 도입하여 초급장교획득을 위한 학도군사교육을 실시하기에 이르렀다.
학군단(ROTC) 설치 이전까지 학생군사훈련은 실시계획의 일관성이 결여되고 배속교관의 활동제약과 행정지원의 미약, 그리고 학교당국의 무관심과 군사훈련을 받는 학생의 처우 및 경비문제 등으로 그 성과와 목적이 상치되는 문제점을 안고 있었다. 그러나 학군단의 설치로 제반 문제점들을 해소하고 초급장교의 훈련과정을 효율적으로 실시하게 되었고 또 초급 간부를 원활하게 충원할 수 있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