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곡서원은 1820년(순조 20) 창건되어 1868년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가 1958년 복원되었다. 소장 유물은 1733년(영조 9)부터 1845년(헌종 11)까지 조선 영조, 정조, 순조, 헌종의 4대에 걸쳐 간행된 것이다. 2003년 5월 16일 전라북도 유형문화재(현, 전북특별자치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어 관곡서원에 소장되어 있다.
전체 분량은 12권 10매로, 보존상태는 비교적 양호한 편이다.
전적 중 『삼선생행장(三先生行狀)』은 관곡서원에서 배향하고 있는 최윤덕 · 이적 · 이형남의 행장을 기록한 것으로, 1권 18장으로 되어 있으며, 가로 23㎝, 세로 36㎝, 두께 0.5㎝ 내외이다. 1733년(영조 9)부터 작성한 것이다. 『선생실기(先生實紀)』는 1권 21장으로서, 가로 22㎝, 세로 35㎝, 두께 0.5㎝이며, 1744년에 작성되었다. 『홀기(笏記)』는 1권 14장으로서, 가로 10.5㎝, 세로 28㎝, 두께 0.5㎝이며, 1736년에 작성되었다. 『장이안(長貳案)』은 1권 29장으로서, 가로 24㎝, 세로 27㎝, 두께 1㎝이며, 1744년에 작성되었다. 『심원록(尋院錄)』은 2권 26장으로서, 가로 21㎝, 세로 24㎝, 두께 0.5㎝이며, 1744년에 작성되었다. 『유생안(儒生案)』은 1권 7장으로서, 가로 21.5㎝, 세로 22.5㎝, 두께 0.2㎝로, 1843년에 작성된 것과 1권 6장으로서 가로 21.5㎝, 세로 33㎝, 두께 0.3㎝로, 1845년에 작성된 것 등 2권이 소장되어 있다. 『보직안(保直案)』은 2권 5장으로서, 가로 22㎝, 세로 31.5㎝, 두께 0.3㎝이며, 1815년에 작성되었다. 『보노안(保奴案)』은 1권 5장으로서, 가로 21.5㎝, 세로 22.5㎝, 두께 0.2㎝로, 1843년에 작성된 것과 1권 6장으로서 가로 28㎝, 세로 28㎝, 두께 0.2㎝로, 1845년에 작성된 것 등 2권이 있다.
「완문(完文)」은 가로 56㎝, 세로 52㎝로서, 1744년에 작성되었으며, 「관곡서원품목(館谷書院稟目)」은 가로 46㎝, 세로 72㎝로서, 1778년(정조 2)에 작성되었다. 「첩보(牒報)」는 가로 41㎝, 세로 38㎝로서, 1780년에 작성되었으며, 「품목(稟目)」은 가로 47㎝, 세로 70㎝로서, 1781년에 작성되었다. 「전령오수교량감관박광언처(傳令獒樹橋梁監官朴光彦處)」는 1매로서, 가로 42㎝, 세로 23㎝이며, 1781년에 작성되었다. 「재임품목(齋任稟目)」은 가로 44㎝, 세로 69㎝로서, 1783년에 작성한 것과, 가로 48㎝, 세로 75㎝로, 1784년에 제작한 것이 있다. 「현감위상고사(縣監爲相考事)」는 1장으로서, 가로 44㎝, 세로 26㎝로, 1749년에 작성되었다. 「부사위차정사(府使爲差定事)」는 가로 38㎝, 세로 34㎝로서, 1784년에 작성되었으며, 「통문(通文)」은 가로 65㎝ 세로 99㎝로서, 1804년에 제작되었다.
관곡서원 소장 고문서에는 서원 접인(接人)의 잡역을 금해줄 것을 진정하여 수령으로부터 승인받는 과정을 알 수 있는 것, 서원 유안(儒案)에 평민이 입록(入録)되고 있으며 유생의 확보가 재정적 의미를 가진다는 것, 그리고 서원 유생을 수령이 차정(差定)하고 그 차첩(差帖)도 수령이 발행한다는 사실 등 새로운 내용을 알려주는 문서가 많다. 한편, 보노안(保奴案)과 보직안(保直案)은 원노(院奴)와 서원의 직숙을 담당하던 원직(院直)을 재정적으로 돕기 위해 배정된 보노와 보직의 명단으로서, 당시 서원에도 보(保)가 배정되었음을 알려주고 있어, 18∼19세기 사회상을 이해하는 데에 좋은 자료가 된다.
서원 관계 서적이나 문서들이 희귀한 편인데, 관곡서원에 관계되는 일괄 문서가 두루 갖추어져 있어 매우 귀중한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