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포천 출신. 본관은 전주. 신소설 『자유종』의 작가 이해조(李海朝)의 손녀이다. 해방 전 경기여자고등학교를 졸업, 1951년 한신대학교 신학과를 나온 후 1953년까지 캐나다 토론토의 엠마누엘 대학에서 신학을 공부했다.
부유한 집안 출신이었으나 일찍이 고아가 되었고, 성장기에 스스로 정신대(挺身隊)로 끌려갈 위협을 느끼며 살았기 때문에 훗날 여성문제와 정신대문제에 열성을 보였으며, 일생을 사회운동·여성운동·통일운동·노동운동·민주화운동에 헌신하였다.
1953년 한신대학교 교수로 부임하여 문익환(文益煥)·안병무(安炳茂)·함석헌(咸錫憲)·이문영(李文永)·문동환(文東煥) 등 진보적인 인사들과 지속적으로 교유하면서 시국현안에 대해 토의하였으며, 문동환 목사 등 16명과 함께 ‘새벽의 집’이라는 공동체생활을 운영하였다.
1970년 한신대학교 교수 전원이 박정희 정부의 독재에 항거하다 사직서를 내고 해직된 후 기독교장로회 여신도회에 참여하면서 사회활동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이때 민중신학을 받아들이고 사회에서 소외된 이들을 찾아다니면서 신학의 새로운 방향을 깨치기 시작했다.
1972년 서울여자대학교에서 잠시 교편을 잡았으나 다시 해직되어 사회운동가로 나서 한빛교회와 갈릴리교회, 목요기도회를 중심으로 기독교 인사들과 교유하고, 서울 한신대학교 선교교육원과 기독학생총연맹(KSCF)에서 해직교수들과 함께 민주화운동을 구상하였다.
1974년 민청학련사건 때 자금연락책으로 몰려 곤욕을 치렀으며, 1976년 3월 1일 명동성당에서 있었던 민주구국선언문사건 때는 앞장서서 선언문을 읽었다. 이로 인해 3년 징역형을 선고받았는데, 주위의 탄원으로 1주일 만에 풀려났다. 기독학생총연맹(KSCF)에서 해직교수들과 함께 민주화운동을 구상하였다.
1992년 제14대 국회에 전국구 의원이 된 후 1994년 국회 내에 여성특별위원회를 조직해 위원장을 맡고 성폭력특별법 제정에 기여하였다. 1990년대 중반에는 ‘평화를 만드는 여성회’를 이끌고 평양을 방문하기도 했다.
저서로는 『한국기독교 여성 백년의 발자취』(1985), 『여신도회60년사』(1987), 『여성신학의 이해』(1989), 『여성들을 위한 신학』(1985), 『여성ㆍ평화ㆍ생명』(고희논문집, 1993) 등이 있으며, 논문으로는 「여성신학이란 무엇인가」, 「예수의 여성관」, 「동북아의 평화와 여성신학」 등이 있다.
1996년 아시아인권기금에서 수여하는 제1회 아시아인권상을 받았으며, 1999년 제4회 여성주간을 기념하여 국민훈장 모란장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