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해방 이후 한신대한교 교수, 국회 여성특별위원회 위원장 등을 역임한 사회운동가.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1970년 한신대학교 교수 전원이 박정희 정부의 독재에 항거하다 사직서를 내고 해직된 후 기독교장로회 여신도회에 참여하면서 사회활동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이때 민중신학을 받아들이고 사회에서 소외된 이들을 찾아다니면서 신학의 새로운 방향을 깨치기 시작했다.
1972년 서울여자대학교에서 잠시 교편을 잡았으나 다시 해직되어 사회운동가로 나서 한빛교회와 갈릴리교회, 목요기도회를 중심으로 기독교 인사들과 교유하고, 서울 한신대학교 선교교육원과 기독학생총연맹(KSCF)에서 해직교수들과 함께 민주화운동을 구상하였다.
1974년 민청학련사건 때 자금연락책으로 몰려 곤욕을 치렀으며, 1976년 3월 1일 명동성당에서 있었던 민주구국선언문사건 때는 앞장서서 선언문을 읽었다. 이로 인해 3년 징역형을 선고받았는데, 주위의 탄원으로 1주일 만에 풀려났다. 기독학생총연맹(KSCF)에서 해직교수들과 함께 민주화운동을 구상하였다.
1992년 제14대 국회에 전국구 의원이 된 후 1994년 국회 내에 여성특별위원회를 조직해 위원장을 맡고 성폭력특별법 제정에 기여하였다. 1990년대 중반에는 ‘평화를 만드는 여성회’를 이끌고 평양을 방문하기도 했다.
저서
상훈과 추모
참고문헌
- 「고 이우정 선생의 아름다운 삶」(정호재, 『신동아』7,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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