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1591년(선조 24) 8월에 제작한 계회도로, 당시 이 계회에 참석한 자들이 여러 점 제작하여 나누어 가졌던 것 중의 하나이다. 화순 밀양박씨 집안에 전해내려 온 것이어서 좌목에 있는 감찰 박지수(朴枝樹)가 소유했던 것으로 짐작된다. 표제는 전서체(篆書體)로 ‘驄馬契會圖(총마계회도)’라 썼는데, 총마는 사헌부 감찰을 일컫는 별칭이다.
전형적인 축(軸) 형식의 계회도로 표제, 그림, 시, 좌목의 4단 구성으로 되어 있다. 그림은 지금의 정부종합청사와 세종문화회관 사이에 있던 사헌부 청사(廳舍)의 전경을 그린 것이다. 관아의 청사를 그린 도상은 16세기 후반기에 등장하는데 관료 개인의 관직 이력을 말해주는 상징물로서의 의미를 지닌 것이다. 그림 아래의 시(詩)는 이 계회도의 소유자가 계회 당시의 감흥을 기록한 것이며, 시의 끝부분에 ‘萬曆十九年仲秋日(만력십구년중추일)’이라 적혀 있어 계회가 개최된 시기를 정확히 알려준다. 족자 하단의 좌목에는 당시 사헌부 감찰의 정원인 24명의 품계와 관직이 자세히 적혀 있는데, 이러한 계회도의 제작은 조선시대의 관료사회에 만연했던 신참례(新參禮)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일반적인 문인들의 계회도와는 달리, 관료사회의 신고식 관행인 신참례 때 신임 관원들이 선배 관원들을 접대하는 연회를 마련하는데, 이때 증정할 목적으로 신임 관원들이 비용을 들여 준비한 작품이다.
이 계회도는 참석자들의 인적 사항을 기록한 좌목(座目)을 통해 제작연도와 계회를 갖게 된 배경을 알아볼 수 있어 사료적 가치가 크다. 또한, 16세기 후반기 서울 중앙관청에서의 계회도 제작 관행과 그 형식을 알려주는 대표적인 예이며, 조선시대 계회도의 변천과정을 살피는 데 매우 중요한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