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훈도감 선사어선 연회도 ( )

회화
유물
문화재
1613년(광해 5) 녹훈도감의 관리들이 제작한 계회도.
정의
1613년(광해 5) 녹훈도감의 관리들이 제작한 계회도.
개설

2002년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비단 바탕에 채색. 세로 83㎝, 가로 69㎝. 1613년(광해 5) 위성(衛星)·익사(翼社)·정운(定運)·형난공신(亨難功臣) 등 네 공신을 책봉할 때, 광해군이 그 실무를 맡은 녹훈도감(錄勳都監)의 관리들을 위로하기 위해 술과 음식을 내려 연회를 베풀자 이를 기념하여 녹훈도감의 관리들이 제작한 계회도이다. 이 계회도는 원래 4단으로 된 족자(簇子) 형식이었으나 현재 좌목(座目)이 떨어져 나간 상태이며, 상단의 표제와 그림, 그 아래에 시를 쓴 부분만이 남아 있다. 녹훈도감 관리들이 누구인지는 파악되지 않는다. 광해군이 위성공신 등의 네 공신을 책봉한 것이 1613년 3월임을 감안하며 그 무렵에 그려진 것으로 추측된다.

내용

1613년(광해 5) 3월 12일, 광해군은 위성공신(衛星功臣) 등 네 공신을 책봉하였다. 임진왜란 때 광해군을 호종한 공신, 임해군(臨海君)의 역모를 막은 공신 등 공과를 선별하여 선정하였다. 그리고 백악산 아래의 회맹단(會盟壇)에서 회맹제(조선 시대에, 공신 등록을 마치고 공신들이 임금 앞에 모여서 충성을 맹세하던 의식)를 가졌으며, 이를 마친 뒤에는 창덕궁 인정전(仁政殿)으로 자리를 옮겨 교서(敎書)를 반포하고 공신교서와 초상화 등 상전(賞典)을 차등 있게 내려주었다.

그 뒤 날짜를 특정할 수 없지만 광해군은 공신 책봉의 실무를 담당한 녹훈도감 관리들의 노고를 치하하기 위해 술과 음식을 내려주었다. 녹훈도감 관료들이 이를 기념하여 제작한 것이 이 계회도이다. 즉 녹훈된 공신이 아니라 도감의 관료들이 이 연회의 주인공이다. 이처럼 도감에 소속된 관원들이 임무를 마친 뒤, 함께 업무에 참여했음을 기념하여 계회도를 제작한 예는 상당히 많았다.

그림의 상단에는 ‘녹훈도감선사어선연회도(錄勳都監宣賜御膳宴會圖)’라고 적혀 있다. 이 연회에 모두 20인의 관리들이 참여했다. 연회 장면을 보면, 관료들이 둘러앉은 중앙에 공연이 펼쳐지고 가장 자리에는 기녀들이 열을 지어 앉아 있다. 건물 바깥에는 악기를 연주하는 악공들과 술 항아리를 관리하는 사람들이 서 있다.

그림의 마지막 하단에는 이항복(李恒福)이 지은 칠언시 「제녹훈도감계회도(題錄勳都監宴會圖)」가 쓰여 있다. 시 말미에 ‘萬曆癸丑(만력계축)’이라 적혀 있어 1613년의 제작 시기를 알 수 있다. 연회의 참석자 명단을 적은 좌목은 원래 있었으나 훼손되면서 떨어져 나갔다.

의의와 평가

녹훈도감 관리들의 계회는 기록으로도 드문 사례인데, 이를 그린 계회도는 더욱 희소하고 흥미로운 자료이다. 「녹훈도감선사어선계회도」는 광해군 대의 연회 장면을 그린 것이어서 조선 중기의 연회도와 기록화 연구에 참고가 되는 그림이다.

참고문헌

李恒福, 『白沙集』 ‘題錄勳都監宴會圖’
『조선의 공신』(한국학중앙연구원, 2012)
송상혁, "광해조(光海朝) 도상을 통해 본 연회음악 고찰 -〈녹훈도감선사어선연회도(錄勳都監宣賜御膳宴會圖)〉,〈기로소연회도: 기석설연지도(耆老所宴會圖: 耆碩設宴之圖)〉를 중심으로-." 溫知論叢 13 (2005): 253-280.
집필자
윤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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