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권영의 편지, 강원도 옹천(甕遷)과 경상남도 울산의 반구대(盤龜臺)를 그린 정선의 진경산수화 2점, 권섭이 쓴 발문이 장황(粧潢)된 서화첩.
구성 및 형식
내용
권섭의 동생인 권영은 자가 중온(仲蘊), 호는 청은(淸隱)이다. 1721년(경종 11) 44세의 나이로 진사시에 합격하여 좌랑을 지냈으며, 1732년(영조 8) 55세의 나이로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했다. 1740년(영조 16)에 대사간에 임명되었다. 이후 1745년(영조 21) 2월 8일에 68세로 일생을 마감했다.
화첩의 앞부분에 실린 편지는 권영이 세상을 떠나기 전에 권섭에게 보낸 것이다. 초서로 써내려 간 내용은 권영 자신의 건강과 근황을 적은 것이다. 자신의 건강을 노심초사 걱정하는 형에게 최근의 병세와 처방의 경과를 담담히 전하는 내용이다. 권영은 이 편지를 쓰고 난 보름 뒤에 세상을 떠났다. 권영이 이 편지를 쓴 날짜는 1월 22일이고, 그 뒤 28일에는 정선의 그림을 권섭에게 보냈다.
화첩 속의 두 그림은 「옹천(甕遷)」과 「반구(盤龜)」이다. 옹천은 강원도 고성에서 통천으로 들어가는 초입에 있는 절벽이다. 독[甕]과 같은 모양의 가파른 낭떠러지를 이루고 있어 옹천이라 불렀다. 또한 반구는 암각화(巖刻畵)로 유명한 울주군 언양면 대곡리에 있다. 고려말 정몽주(鄭夢周, 1337∼1392)가 언양에 유배되었을 때 머물렀던 곳으로 경관이 빼어난 곳이기도 하다. 반구라는 명칭은 이곳에 있는 절벽의 산등성이가 마치 거북이가 앉아 있는 모양과 같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두 점의 그림 가운데 「옹천」은 기존에 그린 예가 몇 점 있지만, 「반구」는 정선의 진경산수화로는 처음 소개되는 것이다. 권영이 이 그림을 소장한 시점을 졸년인 1745년(영조 21) 이전으로 본다면, 정선이 70세 이전에 그린 것이 된다. 정선의 그림 「반구」와 「옹천」에는 정선의 노년기 회화에서 볼 수 있는 완숙한 필치가 잘 나타나 있다. 권영이 정선의 그림을 구하게 된 과정은 알 수 없지만, 안동김씨 일문들의 후원을 받던 정선과의 친분이 남달랐음을 짐작하게 한다.
의의와 평가
참고문헌
- 『옥소 권섭과 18세기 조선사회』(이창희 외, 다운샘, 2009)
- 『18세기 예술사회사와 옥소 권섭』(이창희 외, 다운샘, 2007)
- 『옥소 권섭의 시가연구』(박효순, 탐구당, 1993)
- 「옥소 권섭의 소장 화첩과 권신응의 회화」(윤진영, 『장서각』 20, 한국학중앙연구원, 2008)
- 「권섭이 소장한 정선의 화첩; 『공회첩』」(윤진영, 『문헌과 해석』 통권 43, 문헌과해석사. 2008)
- 「옥소 권섭(1671∼1759)의 그림 취미와 회화관」(윤진영, 『정신문화연구』 제30권 제1호(통권 106호), 한국학중앙연구원, 2007)
- 「옥소 권섭의 소설 한역과 그 의미」(최호석, 『고소설 연구』 11, 한국고소설학회, 2001)
- 「옥소 권섭의 국문시가 연구」(권성민, 서울대학교 대학원 국문학 석사학위논문, 1992)
- 문화재청(www.cha.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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