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장지동유적은 송파구 장지동 산25번지 일대의 장지동 택지개발지구 내 낮은 구릉(해발 50m)의 서쪽 경사면에 위치한다. 유적지의 지형은 동쪽 경사면이 비교적 급경사를 이루고 있고, 구릉 정상부에서 서사면 중앙에 길게 계곡부가 형성되어 있다. 이 유적 일대는 택지개발 예정 지구로서 중앙문화재연구원(현, 중앙문화유산연구원)에 의해 2003년 지표조사가 실시되어 2개소의 유물산포지가 확인되었으며, 2004년 12월 3일부터 2005년 1월 12일까지 시굴조사가 진행되었다.
시굴조사에서 유물산포지1에서 청동기시대 집터와 구덩유구[竪穴遺構] 등이 확인되었고, 유물산포지2에서 조선시대 구덩유구가 조사되었다. 청동기시대 집터가 발굴된 지점은 장지동 택지개발예정 지구의 3개 지점 가운데 Ⅱ지점에서 확인되었다. 발굴조사는 2005년 4월 8일부터 6월 18일까지 진행되었다. 발굴조사 결과 청동기시대 집터 1기, 조선시대 구덩식 집터 2기, 움무덤[土壙墓] 2기, 구덩유구 5기, 우물터 1기, 소성유구 1기, 기둥구멍[柱穴] 유구 8기 등이 조사되었고, 이들 유구에서 민무늬토기조각[無文土器片], 석제품, 자기조각, 경질토기조각 등이 출토되었다.
청동기시대 집터는 야산 정상부에서 서쪽 경사면으로 해발 36~37m 사이에 위치하며, 이곳에서 동쪽으로 약 6m 정도 떨어진 계곡부의 가운데 지점에서 우물터가 조사되었다. 유적지의 토층은 2개의 층위로 구성되어 있었다. 제1층은 흑갈색의 표토층이 약 15∼20㎝ 두께로 퇴적된 토층이고, 제2층은 풍화암반층으로 표토층 바로 아래에서 확인되었다. 청동기시대 집터는 제2층의 풍화암반층을 굴착하고 조성하였다.
집터의 평면형태는 긴네모모양[長方形]이고, 장축방향은 등고선과 평행한 동서방향이다. 집터는 풍화암반층으로 형성된 구릉지의 경사면을 ‘ㄴ’자로 굴착하고 조성한 구덩식 집터이며, 벽면은 대체로 수직에 가깝게 굴착하였다. 그러나 해발고도가 낮은 북쪽 벽면은 유실되었다. 집터의 규모는 장축 길이 610㎝, 잔존 폭 230㎝, 깊이 35㎝이다. 집터 내부에서 특별한 시설은 확인되지 않았고, 바닥 상면에 퇴적된 토층에서 소량의 토기조각과 숫돌[砥石]이 출토되었다.
출토된 유물로는 민무늬토기 몸체와 바닥조각 6점, 숫돌 3점이 있다. 민무늬토기의 몸체 부분은 황갈색을 띠고 있으며, 바탕흙[胎土]은 석립(石砬)이 혼입된 진흙을 사용하여 제작되었고, 표면에 손으로 다듬은 흔적과 간흔적[磨硏痕]이 일부 나타나 있다. 민무늬토기바닥조각은 가운데가 약간 들린 납작바닥[平底]이고, 바닥 안쪽에 손누름 자국이 일부 확인되고 있으며, 바닥의 직경은 7~9㎝이다. 숫돌은 모두 3점이 출토되었는데, 모두 화강편마암으로 제작되었다.
서울 장지동유적에서 조사된 청동기시대 집터는 인근의 한강유역에서 조사된 암사동유적, 미사리유적, 역삼동유적, 가락동유적 등의 집터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특히 평면형태가 세장방형이나 긴네모모양은 청동기시대 전기에 유행한 집터 양식이다. 이러한 장지동유적의 집터 평면형태는 가락동유적이나 역삼동유적은 물론 여주 흔암리유적 등의 집터들과 비교될 수 있는 좋은 자료가 된다. 이 유적은 한강유역의 청동기시대 전기 문화상을 규명할 수 있는 고고학적 자료로서 활용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