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남 망월동유적은 세종대학교 박물관에 의해 2002년 5월 지표조사가 실시되었고, 이를 토대로 2002년 8월 9일부터 9월 15일까지 발굴조사가 진행되었다. 발굴조사 결과, 청동기시대 구덩식[竪穴式] 집터 4기, 구덩유구[竪穴遺構] 1기, 조선시대 움무덤[土壙墓] 1기 등이 확인되었다.
하남 망월동유적은 한강과 바로 인접하여 위치하고 있으며, 해발 30~50m의 낮은 구릉지대로 형성되어 있다. 이 유적 가운데 청동기시대 유적은 집터 4기와 구덩유구 1기이다.
제1호 집터는 평면형태가 긴네모모양[長方形]이며, 장축은 등고선과 평행한 동서방향이고, 구릉지 경사면을 ‘ㄴ’자로 굴착하고 조성한 구덩식 집터이다. 벽면은 수직에 가깝게 굴착하였는데, 벽면 아래에서 직경 15㎝, 깊이 8㎝의 기둥구멍[柱穴] 15개가 75∼105㎝ 간격으로 노출되었고, 바닥 중앙에서도 기둥구멍 3개가 240㎝ 간격으로 확인되었다. 집터의 규모는 동서 길이 850㎝, 남북 폭 300∼320㎝, 깊이 90㎝이다. 바닥은 평탄하게 조성하고, 그 위에 2∼5㎝ 두께로 진흙을 얇게 깔고 불다짐 하였으며, 화덕자리[爐址]는 중앙에서 약간 동쪽에 흔적이 남아 있다. 유물로는 민무늬토기조각과 구멍무늬토기[孔列土器]조각 등이 다수 출토되었다. 석제품은 돌끌, 미완성 석기, 대롱옥, 숫돌, 가락바퀴 각기 1점, 그리고 화살촉 2점, 그물추 14점이 출토되었다.
제2호 집터의 평면형태는 장축이 동서 방향인 긴네모모양이고, 경사면을 ‘ㄴ’자로 굴착하고 조성한 구덩식 집터이다. 집터의 크기는 동서 길이 12.6m, 남북 폭 260∼300㎝, 깊이 56∼60㎝이다. 바닥은 진흙을 얇게 깔고 불다짐 하였고, 동쪽 지점에는 바닥보다 약 3㎝ 정도 높게 화덕자리가 조성되어 있다. 출토된 유물은 토기조각류에 민무늬토기조각, 골아가리구멍무늬[口脣刻目孔列文]토기조각, 구멍무늬토기조각, 석제품에 화살촉 2점, 돌끌 3점, 미완성 석기 10점, 숫돌 1점, 그물추 13점, 토제품에 가락바퀴 1점, 그물추 20점 등이 있다.
제3호 집터는 경사면을 동서 긴네모모양으로 굴착하고 조성한 구덩식 집터이며, 남벽면 일부만 남아 있다. 바닥면은 진흙을 얇게 깔고 불다짐한 흔적이 있으며, 바닥에서 화덕자리는 확인되지 않았으나, 서벽 근처에서 목탄 흔적이 간간이 노출되었다. 집터의 규모는 동서 방향 길이 940㎝, 남북 폭 200∼260㎝, 깊이 20∼35㎝이다. 내부에서 구멍무늬토기, 민무늬토기 몸통, 민무늬토기 바닥 등이 출토되었다.
제4호 집터는 동서 장축 방향의 긴네모모양으로 굴착하고 조성한 구덩식 집터이다. 해발고도가 높은 남벽만 남아 있으며, 생토층 위에 진흙을 얇게 깔고 불다짐 하여 바닥을 조성하였고, 화덕자리는 확인되지 않았다. 바닥에서 목탄이 다수 노출되었고, 서남쪽 가장자리에서 대형 모루돌이 1개 놓여 있었다. 출토된 유물은 토기류에 구멍무늬토기, 민무늬토기 몸체, 민무늬토기 바닥, 석제품으로 돌창 1점, 화살촉 1점, 반달돌칼[半月形石刀] 1점, 미완성 석기 2점, 숫돌 2점, 토제품으로 그물추 1점이 있다.
구덩유구는 평면형태가 장타원형이며, 장축은 등고선과 평행한 동서방향이다. 유구의 동서 벽면은 완만한 곡선을 이루면서 바닥으로 이어지며, 남북 벽면은 거의 수직에 가깝다. 바닥은 동쪽에 약간 높게 단(段)이 조성되어 있고, 이 단에서 서쪽으로 가면서 완만한 경사도를 유지하며 올라간다. 구덩유구 내부에서 미완성 석기 1점, 토제 그물추 1점과 민무늬토기조각이 다수 출토되었다.
망월동유적은 동쪽으로 신석기시대 유적인 미사리 선사유적지와 인접해 있다. 그동안 미사리 선사유적지에서 조사된 문화적 양상은 신석기시대에 삶을 영위했던 사람들의 생활상이 다음 청동기시대로 곧바로 이어지지 않고 단절되는 모습이었다. 그런데 망월동유적에서 청동기시대 초기의 마을유적이 발굴됨으로써 미사리의 신석기시대 말기 사람들이 망월동의 청동기시대 초기로 전이되는 사회적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고 해석된다. 그러한 증거는 집터의 형태나 골아가리구멍무늬토기, 바리모양[鉢形]구멍무늬토기와 같은 토기 구성과 형태 등에서 찾아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