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삼국시대 백제의 금동관과 부속된 금속제 관식(冠飾).
개설
연원 및 변천
내용
웅진기의 관으로는 무령왕 부부의 금제관식과 나주 신촌리 9호분 을관 출토 금동관이 있다. 무령왕의 관식에는 인동초(忍冬草)와 화염문이 도안되었고 영락이 달려 있다. 무령왕비의 관식은 왕의 관식과 달리 관식 문양이 좌우 대칭을 이루고 영락이 달려 있지 않다. 이 2쌍의 관식이 바로 중국 사서에 기록된 금꽃장식의 실물자료라고 추정된다. 신촌리 9호분 을관 출토 금동관은 관테를 갖추고 있다. 초화형의 세움장식 3개를 못으로 고정하였다. 관모는 반타원형 금동판 2장을 접합한 다음 가장자리에 좁고 길쭉한 판으로 덮어씌우고 못으로 고정한 것이다. 금동관의 관테와 관모에는 수리한 흔적이 남아 있다.
사비기의 은제관식은 중국 사서에 기록된 은꽃장식으로 추정되며 나솔(奈率) 이상 고급관인의 상징물임이 분명하다. 도안을 기준으로 살펴본다면 곁가지와 꽃봉오리모양 장식이 3단에 5개인 것, 2단에 3개인 것, 1단에 1개인 것으로 구분된다. 이처럼 화형장식의 도안은 조금 복잡한 것과 간소한 것으로 구분된다. 이러한 도안 차이는 소유자의 신분 차이 내지는 관위(官位)의 차이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현황
의의와 평가
참고문헌
- 『장신구사여체제로 본 백제의 지방지배』(이한상, 서경문화사, 2009)
- 「금동관을 통해 본 4∼5세기 백제의 지방통치」(이훈, 공주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10)
- 「백제 무령왕과 왕비 관의 복원시론과 도상」(이송란,『무령왕릉-출토유물 분석보고서Ⅱ-』, 국립공주박물관, 2006)
- 무령왕 금제 관식(국립공주박물관,『백제 사마왕』, 2001)
- 수촌리1호분 금동관(국립공주박물관 외,『4~5세기 백제유물 특별전, 한성에서 웅진으로』,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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