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어로는 대금구(帶金具)라 한다. 고대사회에서 허리띠는 소유자의 사회적 지위를 잘 보여주는 상징적 물품이다. 특히 관인들은 관복을 입으면서 관대(官帶)를 착용하였는데, 관대에 부착하였던 금속품이 바로 띠꾸미개이다.
재질로 보면 금, 금동, 은, 동제품이 있다. 금제품은 신라의 왕족 무덤에서 한정적으로 출토된다. 신라의 금, 은제 띠꾸미개 가운데 드리개〔腰佩〕가 달려 있는 예가 있다. 드리개의 끝에는 물고기, 용, 곱은옥〔曲玉〕, 향낭(香囊), 집게 등의 장식물이 매달려 있다. 과판(銙板: 띠꾸미개에서 버클에 해당하는 부분)에 용, 봉황, 인동초(忍冬草) 등의 무늬가 표현된 예도 있다. 6세기 중엽 이후 삼국시대 각국에서는 화려한 장식을 갖춘 띠꾸미개가 사라진다.
고구려의 띠꾸미개는 중국 진(晋)과 선비족 전연(前燕)으로부터 영향을 받아 등장하였다. 곧 고구려적인 색채가 발현되었고 4∼5세기대 정치적으로 밀접한 관계에 있었던 신라로 전파되었다. 신라의 띠꾸미개는 특히 화려하며 출토 수량도 많다. 돌무지덧널무덤〔積石木槨墳〕에서 출토된 띠꾸미개 가운데는 인동초를 간략화한 삼엽문(三葉文)이 베풀어져 있고, 다양한 도안을 갖춘 드리개가 매달려 있다. 백제의 한성기 및 웅진기에는 귀면(鬼面) 장식 띠꾸미개가 유행하였다. 무령왕릉 출토 띠꾸미개는 삼국시대 띠꾸미개 가운데 가장 빼어난 걸작이다. 특히 드리개에는 귀면, 두꺼비, 백호, 주작 등의 무늬가 베풀어져 있다. 이 가운데 두꺼비는 달을 상징하는 도상이고 백호와 주작은 사신(四神) 가운데 일부이다.
띠꾸미개는 삼국시대 고구려 · 백제 · 신라가 고대국가로서 성장, 발전했음을 증명해주며 각 국가별 관위제(官位制)의 정비과정을 보여주는 자료로서 의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