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도심에서 서쪽 20km 지점에 위치한 중동 신도시는 주택 공급을 통한 부동산 가격의 안정과 투기 열풍 해소, 수도권의 기능 분담을 목적으로 건설된 수도권의 1기 신도시(분당, 일산, 중동, 평촌, 산본) 가운데 하나이다. 이 신도시는 기존 부천시의 신 중심업무지구와 동시에 경인 공업지역의 중심에 위치한 근교 주거지를 목표로 개발됐다. 경인 공업지역의 한복판에 위치해 다른 신도시에 비해 경제성이 좋아 대한주택공사, 한국토지공사, 부천시 등이 개발 주체로 참여했으며, 1990년 2월에 시작해서 1994년 12월에 준공됐다. 다른 신도시에 비해 녹지가 적은 편이다.
조선시대 정조 때 편찬된 『호구총서』에 보면, 중동(中洞)은 부평부 석천면의 중리(中里)로 기록되어 있다. 1914년 일제의 행정구역 개편 때는 부천군 계남면(이후 소사읍) 중리가 되었고, 1973년 부천시 승격 이후에는 부천시 중동이 되었다. 중리는 ‘간데미’, ‘간담말’의 한자 표기인데, 이 지명은 ‘중간 마을’이라는 뜻을 가진다. 이와 같은 지명은 서울특별시 광진구 중곡동(간뎃말, 가운데말), 중랑구 중화동(중리) 등과 같이 ‘가운데 마을’을 뜻하는 지명으로 널리 쓰였다.
중동 신도시 지역은 별다른 자연 경관상의 특징이 없는 지역이다. 애초에 산이나 큰 강이 없는 넓고 평탄한 농경지였던 지역으로, 다른 신도시와는 달리 녹지를 인공적으로 조성해야만 했다. 따라서 녹지의 비중이 1기 신도시 가운데 가장 낮다.
1980년대 말은 소득과 인구의 증가, 주택 공급 부족 등으로 인해 주택난과 투기 열풍이 심화되던 시기였다. 이에 정부는 ‘주택 200만호 건설’의 일환으로 수도권에 대규모 주거 단지를 조성하기로 하고, 서울과 인접한 경기도 지역에 5곳의 신도시를 건설하게 되었다. 이때 물색된 지역 가운데 한 곳이 바로 중동 신도시다.
중동 신도시는 분당·일산 신도시와는 달리 기존에 이미 60만 명의 인구가 거주하고 있던 부천시 도심 인근에 건설됐다. 당시 부천은 경인 공업지역의 복판에 위치해 우리나라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도시 가운데 하나였지만, 각종 기반시설 및 서비스 시설이 부족했다. 부천시는 중동 신도시의 건설로 도로망을 정비하고, 기반시설을 확충할 수 있는 기회를 맞았다.
중동 신도시 지역은 부지 대부분이 농경지였지만 지구 남쪽으로 경인선 철도가, 지구 북쪽으로는 경인고속국도가 지나 서울 및 인천과의 접근성이 좋았다. 또한 서울과 인천을 잇는 경인국도가 지나는 지역이었기 때문에 다른 신도시에 비해 경제성이 좋아 대한주택공사, 한국토지공사, 부천시 등 3개 주체가 동시에 개발에 참여하는 등 다른 1기 신도시와는 다른 특징을 보였다.
중동 신도시는 부천시의 상동 및 중동에 걸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