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공안정국이란 용어는 1989년 노태우 정부가 보수적 지배체제로의 회귀를 위해 조성한 강압적 정치국면을 의미하는 고유명사적 표현이었다. 이후 공안정국이란 용어가 널리 사용되면서 보수집권세력이 반공주의 정서를 확대·재생산하여 진보세력에 대한 정치적 탄압을 자행하는 경우를 가리키게 되었다.
1987년 6·29선언 이후 한국사회의 민주화 열풍에 힘입어 1988년 6월 여소야대 국회가 출현했다. 그 결과 5공화국 청문회와 국정감사 등이 열리면서 정치부패 척결과 민주화에 대한 국민적 열망이 높아졌다. 당시 여론의 지지를 바탕으로 야당에 의해 주도된 일련의 민주화 노력들은 재야세력의 통일논의로 확대되었다.
정치권의 주요 관심사가 5공화국 비리척결이었다면, 일부 학생 운동권과 재야세력들은 독자적인 통일논의에 적극적이었다. 서경원 의원, 문익환 목사, 임수경 등의 방북사건과 일부 재야인사들의 북한 연방제통일방안에 대한 지지발언은 노태우 정부의 정치적 반격의 계기가 되었다. 노태우 대통령은 1989년 3·1절 기념사에서 민주체제 전복세력에 대한 강한 대응의지를 밝히면서 국가보안법을 근거로 본격적인 친북좌파세력에 대한 공세에 나섰다. 경찰과 검찰의 통일관련 집회 저지 및 학원가에 대한 좌경대책, 평민당김대중 총재의 방북사건연루조사 등이 이루어지면서 정국은 급격히 냉각되었고, 다음 해인 1990년 2월의 민자당 창당으로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