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독 광부 ( )

사회구조
개념
1963년부터 1980년까지 실업문제 해소와 외화획득을 위하여 한국정부에서 독일(서독)에 파견한 7,900여 명의 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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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정의
1963년부터 1980년까지 실업문제 해소와 외화획득을 위하여 한국정부에서 독일(서독)에 파견한 7,900여 명의 광부.
시대적 배경

1960년대에 열악한 경제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박정희 군사정권이 추진한 경공업 위주의 수출지향정책은 농촌 붕괴현상을 초래했다. 그 결과 막대한 실업과 외화 부족현상이 발생했고, 이에 대한 대책으로 한국정부는 광부와 간호사와 같은 노동력의 해외송출을 추진했다. 반면 독일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라인 강의 기적’으로 불리는 놀라운 경제성장으로 인해 노동력 부족사태를 겪게 되었다. 많은 취업의 기회가 보장된 상황에서 독일인들은 힘든 육체노동이 요구되는 일자리를 외면하게 되었고, 그 부족한 인력을 채우기 위해 외국인노동자들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내용

1963년 파독광부 500명 모집에 4만 6,000여 명이 지원할 정도로 당시 한국의 실업난은 심각한 상태였다. 3년 계약의 파독광부들에게는 매월 600마르크(160달러)의 높은 수입이 보장되었기에 많은 한국인들이 독일로 가기를 희망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광산 노동의 경험이 없던 초심자였기에 크고 작은 부상과 후유증에 시달렸다.

광부의 파견은 1963년 12월 16일 한국정부의 임시고용계획에 관한 한국노동청과 독일탄광협회 간의 협정에 의해 이루어졌다. 이 협정에 따르면 한국 광부의 파견조치는 “한국 광부의 탄광지식을 향상시켜 한국 산업에 기여”하고자 하는 목표에서 추진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독일의 광부인력 부족현상을 해소하는 동시에 미국이 독일에게 요청했던 한국 재건지원의 약속 이행이라는 두 마리 토끼 모두를 잡고자 했던 독일정부의 의도와 실업난과 외화획득을 위해 해외인력수출을 원했던 한국정부의 이해가 부합되어 이루어진 조치였다.

참고문헌

『박정희 시대의 유령들』(김원, 현실문화연구, 2011)
「파독 30년의 역사는 차라리 눈물이다」(송태수, 『월간 사회평론 길』95(10), 1995)
집필자
김태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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