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조선중기의 문신 정사신(1558∼1619)이 1583년부터 1587년까지 5년 동안 참여한 계회(契會)를 기념하여 6폭 병풍 형식으로 제작한 회화 작품이다. 1583년경의 「괴원장방계회도(槐院長房契會圖)」와 「봉산계회도(蓬山契會圖)」, 1585년의 「태상계회도(太常契會圖)」, 1586년의 「예조낭관계회도(禮曹郎官契會圖)」와 「형조낭관계회도(刑曹郎官契會圖)」, 1587년의 「미원계회도(薇垣契會圖)」로 구성되었다. 모두 비단 바탕에 수묵으로 그렸으며 크기는 각각 다르다. 16세기 후반의 계회도 유형과 산수화풍의 전개상을 살펴보는 데 유용하다.
정의
조선중기의 문신 정사신(1558∼1619)이 1583년부터 1587년까지 5년 동안 참여한 계회(契會)를 기념하여 6폭 병풍 형식으로 제작한 회화 작품.
개설
내용
「태상계회도」는 정사신이 1585년 국가의 제사(祭祀)와 시호(諡號)를 관장하던 봉상시(奉常寺) 직장(直長)으로 재직할 때 제작되었고, 이듬해 역임한 예조좌랑(禮曹佐郞)과 형조좌랑(刑曹佐郞) 시절에 「예조낭관계회도」와 「형조낭관계회도」가 제작되었다. 마지막으로 「미원계회도」는 1587년 사간원(司諫院) 정언(正言)에 임명된 후 제작한 것이다. 이상 4폭은 당시 관습적으로 행해지던 신참례(新參禮)를 겸하는 회합을 계기로 그려진 동관계회도(同官契會圖)로 추정되고 있다.
「형조낭관계회도」의 경우 보존 상태가 불량하여 화면의 내용을 파악하는 데 한계가 있으나 크게 3가지 형식으로 나누어진다. 먼저 관념산수를 배경으로 한 「태상계회도」는 근경에 돌출한 바위와 쌍송(雙松), 그 아래 상부가 평평한 모임 장소를 설정하고, 중경의 수면을 지나 원경에 산악을 배치한 편파구도이고 산과 바위 표면을 단선점준(短線點皴)으로 처리하여 16세기 후반까지 지속된 안견파(安堅派) 화풍을 보여준다.
「봉산계회도」를 비롯해 「괴원장방계회도」와 「예조낭관계회도」는 실경산수를 배경으로 한 사례이다. 「봉산계회도」에는 동래부 해안가 풍경이 펼쳐져 있고, 「괴원장방계회도」와 「예조낭관계회도」는 당시 계회 장소로 각광받았던 한강변 잠두봉(蠶頭峰) 일대 경관을 포괄하였다. 화면의 근경과 중경에서 잠두봉과 선유도(仙遊島)의 모습이 확인되며, 절제된 선묘와 수묵의 흑백대비 효과 등 절파(浙派) 화풍의 특징이 보인다.
한편 「미원계회도」는 드넓은 산수경관이 아닌 소속 청사(廳舍)의 모습을 부감시로 포착하고, 건물 내부에서 열린 계회 장면과 조합하였다. 이는 1570년대 들어 등장한 새로운 계회도 형식으로서 배경의 산이나 수목 표현에 16세기 중엽 이후 유행한 절파 화풍이 적용되었다.
의의와 평가
참고문헌
- 「조선시대 계회도 연구」(윤진영, 한국정신문화연구원 한국학대학원 박사학위논문, 2004)
- 「16세기말(1580년대) 계회도 신례 정사신 참여 봉산계회도 등 6폭」(이원복ㆍ조용중, 『미술자료』 61호, 1998)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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