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문산본당(文山本堂)의 모태는 1883년에 설립된 소촌(召村) 공소(公所)이다. 일반적으로 ‘본당사목구’, 곧 본당의 '설정'을 '상주하는 사제'가 파견되어 일정한 사목구를 담당하게 될 때로 본다는 점에서, 문산본당의 설정을 1905년 9월 22일에 줄리앙(Marius Julien, 권유량(權裕良), 1882~1944) 신부의 임명 때로 볼 수 있다. 줄리앙 신부는 새 성당 부지를 물색하다가 1907년, 소문리(蘇文里)의 현 성당 부지 2,400여 평과 조선시대 때 찰방관서(察房官署)였던 기와집 10여 채를 매입하고 성당 공사를 시작하였으며, 1908년 건물을 완공하고 주1을 거행하였다.
1923년, 3대 김양홍(金洋洪) 신부 때는 전임 신부들이 모두 주2의 살림집을 개조하여 성당으로 사용해 오던 것을 폐지하고, 새로운 성당(구 성당으로 현재는 강당으로 사용함)을 건축하였다. 또한 5대 김영제(金永濟, 요한) 신부 시기인 1937년에 새 성전을 신축하게 되었다. 이 두 성당은 국가등록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경상남도 진주, 함양 지방에는 1860년대 초, 프랑스인 리델(Ridel, 이복명(李福明), 18301884) 신부의 공소 순방을 도와주던 경상남도 함안 출신의 구한선(타대오, 18441866)이 복음을 전하여 교우촌(敎友村)이 형성되었다. 그러나 1866년, 구한선이 진주 관아에 체포되어 주3으로 순교하고, 1867년에 정찬문 안토니오가 진주에서 참수형으로 순교하는 등 박해로 인하여 교우촌이 해산되었다. 1883년, 로베르(Robert, 김보록(金保祿), 18531922) 신부의 방문을 계기로 현재의 문산읍 소문리에 소촌 공소가 설립되었다. 소촌 공소는 1890년, 죠조(Jozeau, 조득하(趙得夏), 18661894) 신부가 설립한 부산본당(정식 명칭은 초량본당)의 관할로 있다가, 1899년에 타케(Taquet, 엄택기(嚴宅基), 1873~1952) 신부가 설립한 진주본당의 관할로 이속되었다. 1905년, 소촌 공소가 진주본당에서 분가하면서 문산본당이 설립되고 초대 주임신부로 줄리앙 신부가 부임하였다.
1904년, 소촌 공소 신자수는 160여 명에 달했다. 이에 무세 신부는 본당 분할을 뮈텔(Mutel, 주4 주교에게 요청하였다. 이에 줄리앙 신부를 1905년 9월 22일 자로 무세 신부의 보좌로 임명하여 보냈다. 무세 신부는 이미 마산본당 관할하에서 소촌 지역을 분리하여 새로운 본당을 설립할 생각을 하고 있었으므로 줄리앙 신부의 임명은 곧 소촌본당의 설립을 의미한다. 마산(현, 경상남도 창원시)에 도착한 줄리앙 신부는 바로 소촌으로 부임하지 못하고, 이듬해 1월에 삼곡리(三谷里)에 초가 3채를 매입하여 임시 성당으로 삼았다.
1907년, 소문리의 현 성당 부지 2400여 평과 조선시대 때 찰방관서였던 기와집 10여 채를 매입하고 성당 건축을 시작했다. 1908년 9월 29일, 새 성당을 완공하여 축성식을 거행하였다. 1910년, 제2대 김명제(金命濟, 베드로) 신부가 지역 계몽 사업의 일환으로 성당 부속 배명학교(培命學校)를 설립하자 통영, 거제, 사천, 곤양, 함양 등지에서도 학생들이 몰려들었다. 김명제 신부는 1915년에 가난한 이들을 위한 긍련회(矜憐會)를, 1916년에는 소화 유치원을 설립하였다.
1923년, 제3대 김양홍(金洋洪, 스테파노) 신부가 성당을 신축했다. 1927년, 주5 노인들을 위한 고조원(孤助院)을 설립했다. 이때 신축했던 오래된 성당을 현재는 강당으로 사용하고 있다. 1928년경 본당 단체로 전교회, 성모 부인회, 공교 소년회(公敎少年會), 호상계(護喪契), 가톨릭 오시(五時) 품꾼회 등이 있었다.
1937년, 제5대 김영제 신부는 새 성당과 사제관, 수녀원을 건립하면서, 본당 내에 수도성소자(修道聖召者)를 위한 성모성심원(聖母聖心院)을 건립했다. 지금의 주6 성당은 바로 이때 지어진 건물이다. 1950년부터 전쟁과 함께 그 이후 10년간 본당 신부가 자주 교체되자 공동체 역시 분열의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어수선한 가운데 1964년, 박정일 신부가 17대 주임으로 부임하여 레지오 마리에(Legio 주7를 중심으로 본당 내 단체를 재정비하여 약 15년 만에 본당을 정상화했다.
1985년, 제23대 허성학(許盛鶴, 아브라함) 신부는 신용협동조합(信用協同組合)을 설립했다. 1994년, 제27대 김용호(金容鎬, 안셀모) 신부는 소화 유치원 건물을 신축하였다. 제29대 이창섭(李昌燮, 아오스딩) 신부 때에는 본당 설립 100주년을 준비하면서 구 성당과 새로운 성당을 문화재(현, 문화유산)로 등록하게 되었다. 구 성당은 한식 주8로 지어져 한식 성당이었고, 현재의 성당은 철근 콘크리트의 고딕식 건물로 되어 있다. 본당의 주9는 주10이다. 2023년 현재, 서성민(미카엘) 신부가 제36대 본당 주임 신부로 재직 중이다.
문산본당은 1905년에 진주, 함양 등 서부 경상남도 지방에서 진주본당에 이어 2번째로 설립되어, 현재 설립 100주년을 넘긴 유서가 깊은 본당이다. 일제강점기부터 보통학교, 유치원, 양로원 등을 설립하여 지역 계몽 운동에 앞장섰다. 근래에는 1867년 진주에서 참수형으로 순교한 정찬문 안토니오의 묘소를 중심으로 사봉 성지를 개발, 조성하여 순교 신심을 주11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