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7년 쥴리앙 신부는 소문리에 위치하던 조선시대 찰방관서(察訪官署)와 해당 부지 2,400평을 매입하여 관서 기와집을 보수하여 임시 성당으로 사용했다. 1910년 제2대 김명제(金命濟, 베드로) 신부가 지역계몽 사업의 일환으로 성당 부속 배명학교(培命學校)를 설립하자 통영, 거제, 사천, 곤양, 함양 등지에서도 학생이 몰려들었다. 김명제 신부는 1915년 가난한 이들을 위한 긍련회(矜憐會)를, 1916년에는 소화유치원을 설립하였다. 1923년 제3대 김양홍(金洋洪, 스테파노) 신부가 성당을 신축했고, 1927년 무의탁 노인들을 위한 고조원(孤助院)을 설립했다. 1937년 제5대 김영제(金永濟, 요한) 신부는 새 성당과 사제관, 수녀원을 건립하면서, 본당 내에 수도성소자(修道聖召者)를 위한 성모성심원(聖母聖心院)을 건립했다. 1985년 제23대 허성학(許盛鶴, 아므라함) 신부는 신용협동조합을 설립했고, 1994년 제27대 김용호(金容鎬, 안셀모) 신부가 소화유치원 건물을 신축하여, 옛 유치원 건물은 강당으로 활용했다.
오늘날 문산본당의 모태는 1883년 설립된 소촌공소이다. 이보다 앞서 진주, 함양 지방에는 1860년대 초 프랑스인 리델(Ridel, 李福明, 18301884) 신부의 공소 순방을 도와주던 함안 출신의 구한선(타대오, 18441866)이 복음을 전하여 교우촌이 형성되었으나, 1866년 구한선이 진주 관아에 체포되어 장독(杖毒)으로 순교하고, 1867년 정찬문 안토니오가 진주에서 참수형으로 순교하는 등 박해로 인하여 교우촌이 해산되었다. 1883년 로베르(Robert, 金保祿, 18531922) 신부의 방문을 계기로 현재의 문산읍 소문리(蘇文里)에 소촌(召村) 공소가 설립되었다. 소촌 공소는 1890년 죠조(Jozeau, 趙得夏, 18661894) 신부가 설립한 부산본당의 관할로 있다가, 1899년 다케(Taquet, 嚴宅基, 18731952) 신부가 설립한 진주본당의 관할로 이속되었다. 1905년 11월, 소촌 공소가 진주본당에서 분가하면서 문산본당이 설립되고 초대 주임신부로 쥴리앙(M.Julien, 權裕良, 18821944) 신부가 부임하였다. 2011년 현재 최재상(마티아) 신부가 제32대 본당 주임신부로 재직 중이다.
문산본당은 1905년 진주, 함양 등 서부 경남 지방에서 진주본당에 이어 두 번째로 설립되어 설립 100주년을 넘긴 유서깊은 본당이며, 일제 강점기부터 보통학교, 유치원, 양로원 등을 설립하여 지역계몽 운동에 앞장섰고, 근래에는 1867년 진주에서 참수형으로 순교한 정찬문 안토니오의 묘소를 중심으로 사봉성지를 개발, 조성하여 순교신심을 현양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