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주학(程朱學)의 한계성과 그에 관한 고정관념의 세계관을 타파하고 서구의 종교사상을 새로운 의식으로 받아들이려고 하였던 남인신서파(南人信西派)의 대표적 저술이다.
국문목판본과 국문활자본이 현존하는데 몇 군데 자구의 수정이 다를 뿐 내용상 차이는 없다. 그리고 순한글로 서민들이나 부녀자들도 볼 수 있도록 되어 있고, 마테오 리치(Ricci,M.)의 ≪천주실의≫처럼 문답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내용을 보면, 상편은 그리스도교 자연철학의 호교적인 이론의 전개이며, 하편은 계시(啓示)를 중심으로 한 구속론(救贖論)으로 되어 있다. 따라서 하편은 상편의 이론을 전제한 신앙 자체의 신조에 속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 책은 한국 그리스도교사상 최초의 호교론(護敎論)으로 토착인에 의하여 저술되었다는 점에서 가치가 있다.
전 32조로 장·절은 구분되어 있지 않으나 천주의 존재증명(5조목), 천주의 속성(9조목), 속론배제(俗論排除, 4조목), 불교비판(9조목), 천주의 상벌(5조목) 등으로 나눌 수 있다.
이것은 ≪천주실의≫의 내용·순서와 약간의 차이가 있을 뿐 의미상으로는 동일한 내용임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정약종이 자신의 경험과 사상을 첨가해가면서 한국인의 성격에 맞고, 대중적이도록 쓴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한편, 그 사상기반은 어디까지나 동전서학(東傳西學)의 교의(敎義)와 서술에 근거를 두었다.
이러한 사상의 바탕 위에서 순한글로 서술하였기 때문에 당시 사회적 관심의 대상에서 소외되었던 부녀자와 서민층을 위한 저술이 되었으며, 가톨릭 인식의 대중화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정약종이나 그 밖의 당시 서학파 인사들의 의식에는 보유론적(補儒論的) 입장에서 서학세계의 범주를 굳건히 지키려는 강한 의지를 보여주고 있다.
다시 말하면 당시 서학으로 개종한 그들의 의식저변에는 아직도 유교적인 형식주의가 잔존하고 있었으며, 제도적 측면인 서학에서 형식적인 면만을 강조하는 것이 농후하였던 교의 중심의 서학과 도식화된 유학은 유사성이 많다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바로 이러한 논리와 체계 때문에 남인신서파 학자들은 서학에 대하여 보다 더 큰 매력을 느낄 수 있었고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이 책은 그 내용으로 보아 ≪천주실의≫를 근본 바탕으로 삼아 엮었다는 점과 한편, 지금까지 전하여 내려오는 한국천주교 문답서인 교리서가 이 책을 근간으로 하여 계승되지 않았는가 하는 것도 추측할 수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저서를 통하여 한국천주교회의 사상과 윤리관의 전통이 형성되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즉, 개종한 초대 신자들의 학문적 교양은 이 책을 통하여 초기 한국천주교의 내용적인 형성을 엿볼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이 점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은 이 책에 나타나는 대중성이다. 분명히 정약종은 그의 가톨릭교리 해설에서 당시 조선사회의 전통과 토착성을 고려하였다는 점에서 한국그리스도교사상 큰 의의를 가지게 되는 것이다.
본래 원시그리스도교 복음이 스콜라철학이라는 체계적인 설명을 거치고 중국의 ≪천주실의≫라는 동양적인 설명과 체계를 거쳐 우리나라의 전통에 친숙한 예를 들어가면서 교리를 설명하여 많은 사람들의 입교를 목적으로 엮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