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화왕후는 선종의 딸로서 예종의 제1비였는데, 1114년(예종 9, 추정) 나이 31세에 세상을 떠났다. 예종이 왕실법도에 따라 장례를 치르고 능호를 자릉(慈陵)이라 하였다. 진전사원(眞殿寺院)은 기록에 전하지 않는다. 자릉의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으므로 묘제와 널방의 구조 등을 파악할 수 없다. 다만 자릉이 예종의 능인 유릉(裕陵) 근처에 있었을 가능성은 상존한다.
고려 당시 자릉에 간수군이 배치되어 능을 지켰으며, 조선 세종 때인 1432년(세종 14)에 자릉 주변에서 벌목하거나 채취하는 것을 금했다.『순조실록』에 1818년(순조 18) 2월 고려 왕릉 중 능주가 확실한 30기에 표석을 세우고 능주를 모르는 왕릉급 능묘에도 번호를 매겼다는 기록과,『고종실록』에 1867년(고종 4)에 고려 왕릉·왕비릉 57기의 능을 봉축하고 표석을 세웠다는 기록을 통해서, 조선 말엽까지 자릉이 지속적으로 관리되었을 개연성이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