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종은 고려전기 제13대 왕이다. 재위 기간은 1083~1094년이며, 문종의 아들로 형인 순종이 즉위 두 달 만에 죽자 즉위했다. 승과를 설치하고 불교를 장려했으며, 아우 의천이 송에서 불법을 공부하고 돌아오면서 불경과 경서 1천권을 바치고 흥왕사에 교장도감을 세울 것을 건의하자, 송·요·일본 등지에서 사들인 서적 4천여 권을 모두 간행하게 했다. 예부의 건의로 국학에 공자의 제자 72현의 상을 그려 벽에 붙이기도 했다. 경사에 밝고 제술에 뛰어났으나 놀이에 절도가 없고 사탑 건립에 백성들을 강제동원하여 원망이 많았다고 한다.
재위 1083∼1094. 이름은 왕운(王運), 초명은 왕증(王蒸) 또는 왕기(王祈), 자는 계천(繼天). 아버지는 문종(文宗)이고 어머니는 인예순덕태후(仁睿順德太后) 이씨(李氏), 비(妃)는 이석(李碩)의 딸 사숙태후(思肅太后)이다.
어려서부터 경사(經史)에 밝고 제술(製述)에 뛰어나 문종 때 국원후(國原侯)에 봉해졌으며, 상서령(尙書令)에 제수된 뒤, 순종(順宗) 때 수태사 중서령(守太師中書令)이 되었다. 형인 순종이 즉위한 지 두 달 만에 죽자 뒤를 이어 왕위에 올랐다.
1084년(선종 1) 승과(僧科)를 설치하고 불교를 장려했으며, 변경을 지키는 사졸들에게 저고리와 바지를 내려주었다. 1085년 아우 의천(義天)이 송나라에 들어가 2년 동안 불법을 공부하고 돌아오자 환영의식을 성대히 하였다. 의천은 불경(佛經)과 경서(經書) 1천 권을 바쳤고, 흥왕사(興王寺)에 교장도감(敎藏都監)을 세울 것을 건의했다. 송 · 요 · 일본 등지에서 서적을 사들여 4천여 권에 달했는데 모두 간행하게 하였다.
1089년 회경전(會慶殿)에 13층 금탑(金塔)을 세우고, 인예왕후(仁睿王后: 문종의 둘째 비, 이자연의 딸)의 청에 따라 천태종(天台宗)의 중심사찰인 국청사(國淸寺)를 짓게 하였다. 1091년 예부(禮部)의 주장으로 국학(國學)에 72현의 상을 벽에 그려 붙였는데, 차례는 송나라 국자감(國子監)의 예를 따르고, 복장은 10철(十哲)을 모방하게 하였다.
1092년 병이 들어 의원이 처방한 약을 먹고 문득 시를 지었는데 “약효가 있고 없음이야 무엇을 염려하랴. 덧없는 인생, 시작이 있었으니 어찌 끝이 없으리. 오직 원하는 것은 여러 가지 선행을 닦아 청청한 곳에 올라 부처에게 예를 드림이네”라는 구절이 있어 사람들이 놀라고 안쓰럽게 여겼다.
1094년 2월 열병(閱兵)하고, 5월에 연영전(延英殿)에서 죽었다.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슬기로웠으며, 자라서는 효도하고 공손하고 검소하였다. 그러나 놀이에 절도가 없고, 사탑(寺塔)을 많이 세워 노역(勞役)을 백성에게 지움으로써 원망이 많았다고 한다. 능은 개성에 있는 인릉(仁陵)이며, 시호는 사효(思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