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인주(仁州, 현 인천광역시)이고, 아버지는 이자연(李資淵), 어머니는 경주 출신 김인위(金因渭)의 딸이다. 여동생은 문종의 제2비인 인경현비(仁敬賢妃)와 제3비인 인절현비(仁節賢妃)로, 세 자매가 문종과 혼인하였다.
인예순덕태후(仁睿順德太后)는 처음 궁에 들어가 연덕궁주(延德宮主)로 불렸으며, 1047년 맏아들 순종을 낳고, 1049년 둘째아들 선종을 낳은 뒤 1052년(문종 6) 왕비로 책봉되었다. 순종(順宗), 선종(宣宗), 숙종(肅宗), 대각국사(大覺國師) 왕후(王煦), 상안공(常安公) 왕수(王琇), 보응승통(普應僧統) 왕규(王規), 금관후(金官侯) 왕비(王㶨), 변한후(卞韓侯) 왕음(王愔), 낙랑후(樂浪侯) 왕침(王忱), 총혜수좌(聰慧首座) 왕경(王璟)과 적경궁주(積慶宮主), 보령궁주(保寧宮主) 및 어려서 죽은 공주 2명까지 10남 4녀를 낳았다.
1086년(선종 3) 2월에 태후에 책봉되니 여러 도에서 모두 표문을 올려 축하했고, 주현(州縣)이 포(布) 10만여 필을 바쳤고, 탁라(탐라)도 역시 와서 축하하고 방물(方物)을 바쳤다.
인예태후는 성품이 불교를 좋아했다. 특히 대각국사로부터 천태교에 대해 듣고 기뻐해 1089년(선종 6) 10월에 국청사(國淸寺)를 창건했다. 1092년(선종 9) 6월에는 천태종 예참법(禮懺法)을 백주(白州) 견불사에 개설해 1만 일로 기약했다. 또한 은으로 법상종의 지침서인 『유가현양론(瑜伽顯揚論)』을 쓰기를 발원하였으며, 이는 숙종 때 완성되었다. 1092년(선종 9) 9월에 서경(평양)에서 세상을 뜨니 개경으로 운구되어 대릉(戴陵)에 묻혔다.
인예태후가 왕성하게 추진하던 불교 사업은 사후에 아들인 숙종과 의천이 계승해 완성시켰다. 즉 1096년(숙종 1) 10월에 왕은 건덕전에서 도량을 3일 동안 개최해 인예태후가 발원해 완성한 화엄경을 전독(轉讀)했다. 1097년 2월에 국청사가 완성되니 숙종이 친히 경찬도량(慶讚道場)을 개설하고 경찬시(慶讚詩)를 지어 유신(儒臣)에게 화답하도록 하였다. 5월에는 대각국사가 국청사에 주지하며 천태교를 강론해 해동 천태종을 개창했다. 1102년(숙종 7) 5월에는 왕이 현화사에 행차하여 인예태후가 발원한 은서(銀書) 『유가현양론』을 경찬(慶讚)했다.
시호는 인예순덕태후이며, 국청사에 진전(眞殿)이 건립되었다. 1096년(숙종 1) 9월 경인일에 왕이 인예태후의 기신도량(忌辰道場)으로 인해 국청사에 가서 행향(行香)하고 진전에 제사하고는 이를 항식(恒式)으로 삼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