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고려 제31대 공민왕 때 홍건적의 제1차 침입을 물리친 공으로 책봉된 공신을 말한다. 기해년(1359) 홍건적 격퇴에 대한 전체적인 공신 책봉은 제때에 이뤄지지 않았다. 삼원수(三元帥) 사건, 흥왕사 변란으로 흔들리는 정국을 안정시키기 위해 공신책봉을 단행한 것으로 보인다. 공민왕이 공신 책봉을 제때 하지 않은 것은 공신들의 세력 신장을 우려했기 때문으로 이해된다. 기해격주홍적공신 중의 하나인 조돈의 귀순과 활약은 사돈인 이자춘(李子春)에게 영향을 주었으며 동북면 세력이 고려 말엽 정치적으로 크게 성장하는데 바탕이 되었다.
정의
고려 제31대 공민왕 때 홍건적의 제1차 침입을 물리친 공으로 책봉된 공신. 기해공신.
내용
도원수 이승경은 이 직후에 질병으로 인해 먼저 돌아왔다. 그해 3월에 부원수 경천흥, 도만호 안우, 상만호 김득배(金得培)가 승첩을 보고하고는 군대를 이끌고 개선하였다. 고려가 홍건적의 제1차 침략을 물리치자, 공민왕은 개선한 군대에게 연회를 베풀고 안우를 추충절의정란공신(推忠節義定亂功臣)에, 김득배를 수충보절정원공신(輸忠保節定遠功臣)에, 이방실을 추성협보공신(推誠恊輔功臣)에 책봉했다. 그러나 기해년(1359) 홍건적 격퇴에 대한 전체적인 공신 책봉은 이때 이뤄지지 않았다.
고려가 홍건적의 제2차 침입을 극복하고 흥왕사의 변란이 진압된 1363년에 흥왕토적공신(興王討賊功臣: 흥왕공신), 부시피난공신(扶侍避難功臣), 건의집병정난공신(建議集兵定難功臣), 신축호종공신(辛丑扈從功臣), 첨병보좌공신(僉兵輔佐功臣), 수복경성공신(收復京城功臣: 경성수복공신) 등이 책봉되었다. 그리고 그 해 11월 임신일에는 기해격주홍적공신(己亥擊走紅賊功臣)과 첨병제사공신(僉兵濟師功臣)이 책봉되었다. 삼원수(三元帥) 사건, 흥왕사 변란으로 흔들리는 정국을 안정시키기 위해 공민왕은 개경으로 들어오자마자 서둘러 공신책봉을 단행한 것으로 보인다. 우선 홍건적의 제2차 침략으로 파생된 여러 유형의 공신부터 책봉하고 난 후에 홍건적의 제1차 침략을 물리치는 데 공훈을 세운 공신을 뒤늦게 책봉한 것이었다.
기해격주홍적공신은 1등공신과 2등공신으로 구별되었다. 1등공신은 수첨의시중(守僉議侍中) 경천흥, 찬성사(贊成事) 송경(宋卿) · 안우경(安遇慶), 전(前) 찬성사 이성서(李成瑞), 판개성부사(判開城府事: 개성부의 판사) 이순(李珣), 삼사좌사(三司左使) 우제(禹磾), 전(前) 평리(評理) 목인길(睦仁吉), 전 지도첨의(知都僉議) 유방계(柳方啓), 밀직사(密直使) 김광조(金光祚), 지밀직사사(知密直司事) 지용수(池龍壽), 검교밀직부사(檢校密直副使) 조돈(趙暾), 판도판서(版圖判書) 허자린(許子麟) · 신순(辛珣), 전법판서(典法判書) 유계조(柳繼祖) · 김선치(金先致) 등이었다. 2등공신은 첨의평리(僉議評理) 한휘(韓暉), 밀직부사(密直副使) 변안열(邊安烈), 밀직상의(密直商議) 조희고(趙希古), 전 밀직부사 김란(金蘭) 등이었다. 하지만 안우, 이방실, 김득배는 총병관이었던 정세운(鄭世雲)을 살해한 사건으로 인해 죽임을 당했기 때문에 수복경성공신에는 물론 기해격주홍적공신에도 포함되지 못했다.
의의와 평가
참고문헌
- 『고려사(高麗史)』
-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 『고려시대사』(김상기, 동국문화사, 1961)
- 「신돈의 집권과 그 정치적 성격」(민현구,『역사학보』38·40, 19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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