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은 1인이고 품질(品秩)은 종1품으로 중서령(中書令)·문하시중(門下侍中)과 더불어 고려의 최고관직이었다.
그러나 실무직이 아니라 종친에게만 수여되는 명예직이었으며, 중서령이 같은 명예직이면서도 종친 뿐 아니라 일반 관리들에게도 주어졌던 것과는 달리, 상서령은 문종 때 최유길(崔惟吉)이 수사공섭상서령(守司空攝尙書令)에 임명된 것을 제외하고는 일반관리에게 제수된 사례가 전혀 없다.
따라서, 상서성의 실질적인 장관은 그 아래의 좌우복야(左右僕射)가 맡게 되었다. 1275년(충렬왕 1) 상서성이 중서문하성에 병합되어 첨의부(僉議府)로 될 때 폐지되었으며, 1356년(공민왕 5) 상서성이 부활되면서 다시 두어졌다가 1363년 상서성과 함께 폐지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