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정의
고려 전기, 제13대 왕 선종의 제2 왕비.
가계 및 인적사항
주요 활동
국원공의 아내였던 시기의 사숙태후의 활동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 수 없다. 예종(睿宗)대에 선종묘(宣宗廟)에 첫째 후비인 정신현비(貞信賢妃)를 합사하는 문제가 거론되었을 때 간관이 “정신현비는 국원공의 비(妃)로 있은 기간이 오래지 않았고, 태후는 국원공의 비빈으로서 왕비가 될 때까지 내조한 공이 많습니다. 그리고 아들인 헌종이 왕위를 계승하고 이후 퇴거할 때까지 그 덕을 잃은 것이 없으니 태후를 합사하는 것이 옳습니다.”라고 하는 것에서 사숙태후가 국원공의 배우자로서 일정한 역할을 하였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아들 헌종이 어린 나이에 즉위하였기 때문에 그녀가 3년간 섭정하였다. 이를 『고려사(高麗史)』에는 ‘임조칭제(臨朝稱制)’라고 언급하고 있다. ‘임조칭제’는 유약한 황제를 대신하여 태후가 왕권을 행사하는 것을 일컫는 것이다. 이러한 뜻에서 본다면 사숙태후는 섭정할 때 정치적 영향력을 발휘하였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1095년(헌종 1) 이자의(李資義)의 난이 일어나고 이를 진압한 숙부 계림공(鷄林公) 왕희(王熙)에게 선위하면서 실각하였다.
상훈과 추모
참고문헌
원전
- 『고려사(高麗史)』
-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단행본
- 남인국, 『고려중기 정치세력연구』 (신서원, 1999)
- 정용숙, 『고려시대의 후비』 (민음사, 1992)
논문
- 김당택, 「문종~인종조 인주 이씨의 정치적 역할」 (『한국중세사회의 제문제』, 한국중세사학회, 2001)
- 김창현, 「고려 11세기의 정치와 인주 이씨」 (『인천학연구』 2-1, 인천대학교 인천학연구원, 2003)
- 이정란, 「고려 선종비 사숙태후와 인종비 공예태후」 (『한국인물사연구』 16, 한국인물사연구소,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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