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후

  • 역사
  • 인물
  • 고려 전기
고려 전기에, 좌부승지 병부낭중, 좌승선 등을 역임한 문신.
인물/전통 인물
  • 관련 사건여진정벌
  • 본관미상
  • 사망 연도미상
  • 성별남성
  • 주요 관직좌부승지 병부낭중|좌승선
  • 출생 연도미상
  • 출생지미상
집필 및 수정
  • 집필 2012년
  • 신안식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고려 전기에, 좌부승지 병부낭중, 좌승선 등을 역임한 문신.

생애 및 활동사항

가계는 자세하지 않다. 삼척심씨(三陟沈氏) 세보에 따르면 삼척에서 대대로 살아온 가문 출신이었다고 한다. 1103년(숙종 8) 11월 요나라에 파견되어 신년을 축하하였다.

심후는 윤관(尹瓘)의 여진정벌 과정에서 활약하였다. 1107년(예종 2) 12월 좌부승지 병부낭중(左副承旨 兵部郎中)으로서 내시 형부원외랑(內侍 刑部員外郞) 한교여(韓皦如)와 더불어 예종의 조서를 윤관, 오연총(吳延寵)에게 전달하고 여러 장수들을 격려하는 한편 물품을 차등 있게 하사하였다. 여진정벌이 성공한 결과 1108년(예종 3) 2월 윤관이 동북 9성의 구축과 더불어 공험진(公嶮鎭)에 비석을 세워 동북 경계로 삼았다. 그러나 이후 여진의 끈질긴 9성 반환 요구와 기습공격에 따라 고려군이 철수하게 되었다.

1109년(예종 4) 5월 좌승선(左承宣) 심후는 동북 9성에서 철수하던 동계(東界) 군사들에게 왕의 명령을 전달하고 은병(銀甁) 40개를 나눠주었다. 또한 같은 해 7월 윤관·오연총이 돌아오는 길에 심후는 왕의 명을 받고 도중에 부월(斧鉞)을 거두기도 하였다. 같은 해 11월에 건덕전(乾德殿)에서 조회를 열었을 때 여러 신하들이 윤관·오연총 등의 패전 책임을 물어 죄주기를 청하자 심후는 왕의 명령을 받들고 그들을 선유하였다. 이러한 활동을 통해서, 심후는 여진정벌에 찬성했던 정치세력이었으며 예종의 측근으로서 신임을 받았던 문신이었다고 볼 수 있다.

참고문헌

  • - 『고려사(高麗史)』

  • -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 - 『고려시대의 정치변동과 대외정책』(이정신, 경인문화사, 2004)

  • - 『고려 예종대 정치세력 연구』(김병인, 경인문화사, 2003)

  • - 「12세기 초 고려의 개혁 추진과 정치적 갈등」(채웅석, 『한국사연구』112, 2001)

  • - 「윤관세력의 형성: 윤관의 여진정벌과 관련된 몇 가지 문제의 검토를 중심으로-」(정수아, 『진단학보』66, 1988)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콘텐츠 이용 안내

콘텐츠 수정 요청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주제
0 / 500자
근거 자료
첨부된 파일이 없습니다
파일선택

최대 5개, 전체 용량 30Mb 첨부 가능

작성 완료되었습니다.

작성글 확인

다운로드가 완료되었습니다.

다운로드할 미디어를 선택해주세요.

모든 필수 항목을 입력해주세요.

다운로드할 미디어가 선택되지 않았습니다.

다운로드 중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미디어 다운로드

  • 이용 목적을 상세히 작성하여 주세요.
    서비스 개선에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출처 표기 : [사진명]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이용목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