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와 출신지는 자세하지 않다. 유원서(兪元胥)는 예종대 윤관(尹瓘)의 여진정벌 당시 활약하였다. 1109년(예종 4년) 6월 윤관(尹瓘)과 오연총(吳延寵)이 정주(定州, 현재의 함경남도 정평)로부터 군사를 정돈하여 여진족에게 포위된 길주(吉州, 현재의 함경북도 길주)를 구하러 가는 도중 나복기촌(那卜其村)에 이르렀다. 이때 함주사록(咸州司錄) 유원서가 고려 측과 강화(講和)를 맺으려는 여진 추장들의 급보를 윤관에게 전달하여 고려군 수뇌부가 대응책을 수립할 수 있었다. 유원서는 동북9성(東北九城)을 여진에게 반환하고 고려군이 안전하게 철수하게 하는데 일조하였다. 1128년(인종 6) 11월 공부 원외랑(工部員外郞)으로서 금나라 임금의 생일을 축하하는 외교사절로 파견되었다. 이후의 행적은 더 이상 발견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