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와 출신지는 자세하지 않다. 이몽전(李蒙戩)은 993년(성종 12) 윤10월 거란의 제1차 침입 때 사신으로서 활약하였다. 이 해에 거란 장수 소손녕(蕭遜寧)이 고려를 침략하여 항복을 요구하자, 서희(徐熙)가 소손녕의 글을 보고 국왕 성종에게 화친할 수 있겠다는 판단을 알렸다. 이때 감찰사헌(監察司憲, 종6품) 이몽전은 예빈소경(禮賓少卿, 종5품)의 직책을 가지고 거란군 진영으로 나아가 화친하기를 청하였다. 이몽전이 적장 소손녕에게 고려를 침략한 이유를 묻자 소손녕은 고려가 화친하려면 국왕이 빨리 와서 항복하라고 협박하였다. 이몽전은 개경으로 돌아가 소손녕의 말을 그대로 전하였다.
이후 고려 조정에서는 항복론, 서경 이북의 땅을 떼어서 거란에게 주고 황주(黃州)로부터 절령(岊嶺)까지를 국경으로 삼자는 할지론(割地論) 등이 대두하였다. 그러나 서희 등 주전론자(主戰論者)가 펼친 자주적 입장에서의 강화외교(講和外交)가 성공하였다. 그 결과 거란군을 철수시키고 강동6주(江東六州)를 획득하였다. 이몽전은 서희의 외교에 일정한 영향을 주었을 뿐만 아니라 당시 서희와 정치적 견해를 같이하였던 인물로 여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