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간」은 조선시대에 수신자나 발신자 중 여성이 관여하는 한글 편지이다. 내간·언문간찰·언문편지·언서·언찰로도 불린다. 조선시대의 글이 ‘문자’, ‘진서’ 등으로 지칭되는 한문과 대비되는 이름이다. 현전하는 가장 이른 사대부가의 언간은 ‘순천김씨묘출토언간’이다. 이 언간을 통해 16세기 중후반에 지방 사대부가에서 언간이 보편화되었음을 알 수 있다. 17세기부터는 언간첩이 유행하였으며, 19세기부터는 편지 쓰기 교과서인 『언간독』이 등장하였다. 언간은 구어체 자료의 성격으로 방언 형식이나 고유의 일상 어휘를 풍부하게 보여 준다.
조선시대 내내 한글은 ‘국문(國文)’으로서의 공식성을 인정받지 못한 채 공적(公的)인 영역에서 사용이 극히 제한되었다. 이러한 제한으로 인해 조선시대의 ‘언간’은 발신자나 수신자 어느 한쪽으로 반드시 여성이 관여하는 특징을 보여 남성 간에만 오고간 한문 간찰과 뚜렷이 대비된다.
여성과 관련된 성별(性別) 특징으로 인하여 종래 ‘언간’은 ‘내간(內簡)’으로 일컬어지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른 시기의 언간에 해당하는 16, 17세기의 것만 보더라도, 수신자는 왕이나 사대부를 비롯하여 한글 해득 능력이 있는 하층민에 이르기까지 거의 전 계층의 남성이 될 수 있었다. 그러므로 한문 간찰이 사대부 계층 이상 남성만의 전유물이었다면, 언간은 특정 계층에 관계없이 남녀 모두의 공유물이었다고 할 수 있다.
조선시대에 이처럼 폭넓게 실용된 까닭에 언간은 우리 국어를 지키고 가꾸어 온 귀중한 토양이 되었다. 그러나 그것은 ‘언문’이 그러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왕실에서 양반층으로, 다시 한글을 해득할 수 있는 평민이나 하층민으로 단계적 확산을 거친 결과였다.
왕실에서 일찍부터 언간이 자주 왕래한 것은 실록(實錄)에서 확인되지만, 현전하는 언간을 놓고 보면, 사대부가의 것이 왕실보다 시기상 앞선다. 이는 물론 초기의 왕실 언간이 별로 전하지 않은 탓이나, 그 근본 원인은 궁중과 민간 사이에 서로의 필적(筆蹟)이 남는 것을 금기(禁忌)로 삼은 데 있었다.
현전하는 사대부가의 언간으로서 가장 이른 것은 1977년 충청북도 청주시 순천김씨의 묘에서 출토된 ‘순천김씨묘출토언간(順天金氏墓出土諺簡)’을 들 수 있다. 이들 언간이 씌어진 연대는 임진왜란 전 16세기 중후반에 해당하는데, 여기서는 189건에 해당하는 적잖은 언간이 부모와 자식 간, 부부간, 장모와 사위 간, 시부모와 며느리 간, 남매간 등에 오갔음이 실증된다.
한글이 지방에 보급되기 시작한 시기가 대략 16세기부터라고 할 때, 이미 16세기 중후반에 이르면, 지방의 사대부가에서 언문 내지 언간 사용이 보편화된 현실을 여실히 볼 수 있다. 이후 17세기부터는 현전하는 언간이 양적으로 크게 늘어 유명 가문(家門)에 언간첩(諺簡帖)의 형태로 전하는 것만도 적지 않은데, 이는 후대에 언간 사용이 그만큼 활발하였음을 말해 준다.
19세기부터 등장하는 방각본(坊刻本) 『언간독(諺簡牘)』의 존재는 언간 사용이 대폭 일반화된 양상을 여실히 보여 준다. 『언간독』은 각종 언간에 사용되는 대표적 규식(規式)을 모아 놓아 편지 쓰기의 교과서 구실을 해 오던 책으로 상편(上篇)에는 부자간(父子間), 형제간(兄弟間)을 비롯하여 친구 간(親舊間), 상고 간(商賈間) 등 남성 간의 언간 규식이 대거 소개되었는데, 이들은 모두 예전에 한문 간찰에서나 볼 수 있었던 규식에 해당한다.
나아가 19세기 후반에 이르면 『언간독』의 내용을 증보(增補)한 『징보언간독(增補諺簡牘)』이 방각본(坊刻本)으로 널리 유통된다. 이 또한 언간 사용이 이전보다 확산된 현실을 반영하는데 『징보언간독』에 증보된 내용 중에는 이른바 ‘고목(告目)’과 ‘답배〔答牌〕’의 규식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들 규식이 주로 상전과 노비 사이의 주종 간(主從間)에 오가는 언간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언간 사용이 하층민에게까지 보편화된 현실을 반영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언간(諺簡) 자료는 붓으로 씌어진 필사(筆寫) 자료 중에도 특히 난해한 자료로 꼽힌다. 개인마다 서체가 다양한데다 글씨를 흘려쓴 정도가 특히 심하여 언간 자료에 익숙하지 않은 연구자에게는 판독 자체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여기에다 언간 자료는 판독 이전에 자료를 수집하고 정리하는 일부터 만만치 않은 작업에 속한다. 이같은 어려움 때문에 일생 동안 언간 자료의 집대성을 목표로 노력한 김일근(金一根, 1986/1991)에서조차 근 30년 동안 전력을 기울여 발굴하여 소개한 언간의 총 수효는 기껏해야 300여 건을 넘지 못하는 수준에 머물렀다.
그러나 1990년대 이후에는 언간 자료에 대한 역주(譯註) 작업이 본격화하고 이에 따라 연구 여건이 크게 변모하게 되었다. 조항범(趙恒範, 1998), 백두현(2003)을 비롯하여 국어학자가 주도하는 역주 작업의 결과물이 속속 출간되자, 판독문의 고어에 대한 주석이 충실해지면서 판독의 신뢰성이나 현대어역의 정확성도 함께 높아져 결과적으로는 언간 자료가 더욱 널리 활용되는 계기가 되었다.
더욱이 2000년대 중반 이후에는 한국연구재단(구 학술진흥재단)의 후원 아래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대규모 언간 역주사업의 결과물이 2005년과 2009년에 각각 출판되었다. 게다가 언간 자료를 이용한 어휘사전과 서체사전의 편찬은 물론, 언간 자료의 종합화를 위한 판독자료집 출판(황문환 외 2013) 및 데이터 베이스(Data Base) 구축 작업까지 진행되어 자료 연구나 활용이 학계는 물론 일반에까지 널리 확산될 계기가 마련되었다.
이에 따라 1980년대만 하더라도 판독문을 활용할 수 있는 언간 자료의 수가 기껏해야 400건을 넘지 못했던 것이 대규모 역주 사업이 완료된 최근에는 무려 2,700여 건을 상회하는 수준까지 이르게 되었다. 더욱이 이들 언간은 원본 사진과 비교가 가능하여 판독의 객관성 면에서 신뢰도가 높은 자료이기 때문에 언간 자료는 이제 방대한 자료 결집과 함께 다방면의 연구로 활성화될 시점(時點)을 맞이하고 있다.
언간은 자료 성격상 일반적인 언해(諺解) 자료와 달리 번역(飜譯)의 영향을 받지 않아 당시의 자연스러운 국어 질서에 따르고, 고유의 일상 어휘도 풍부하게 보여 주는 특징이 있다. 또한 대화 상황을 전제한 구어체(口語體) 자료의 성격 때문에 경어법을 비롯하여 구어나 방언에 특유한 형식을 다른 자료보다 쉽게 반영하는 특징도 있다. 그뿐만 아니라 개인차를 정밀하게 관찰할 수 있는 특징으로부터 국어사 연구에 사회언어학적 접근 가능성을 열어 주기도 한다.
따라서 언간 자료의 특성을 잘 살리면 앞으로 언해 위주의 판본 자료를 보완하여 국어사 연구의 폭과 깊이를 더하는 데 크게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나아가 언간의 사연 속에는 당시의 실생활이 그대로 녹아 있어 생활사, 민속사, 사회사 등 여러 분야에서 살아 있는 자료가 될 수 있다. 또한 필사 자료 가운데 개인의 다양하고 독특한 서체(書體)를 가장 잘 반영하여 한글 서체의 변천을 구명할 서예사 연구에도 좋은 자료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