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일전쟁 이후 일본은 자국은 물론 식민지 전 영역을 전시체제로 재편하였고, 전쟁이 장기화되자 조선 전체를 전쟁 수행이라는 목적하에 통제하고 조정하는 총력전 체제로 돌입하였다. 일본은 1937년 10월 황국신민의 서사, 1938년 3월 ‘국가총동원법’, 1940년 2월 창씨개명 실시, 7월 ‘기본국책요강’, 10월 ‘국민총력운동’, 1942년 5월 징병령 등의 법령 발표와 시행을 통해 사회 전반에 걸친 의식 개혁은 물론 통제와 증산의 요구를 점점 강화하였다. 창씨개명과 내선일체를 종용하였으며, 농촌, 광산, 공장 등에서의 증산과 물자통제 역시 전쟁 수행을 위한 중요한 국책의 하나로 간주하였다. 이러한 국책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선전하는 문학이 바로 국책문학이다. 국가의 모든 부분에서 전쟁 수행과 참여가 강요되는 상황에서 문학 역시 예외가 될 수 없었다. 따라서 전시하 국책에 따라 창작된 황국신민화정책을 주제로 삼은 문학과 농민문학, 대륙문학, 생산문학, 해양문학 등을 일괄하여 국책문학이라 한다.
일제 말기 국책의 가장 핵심적 과제는 민족동화정책이었다. 민족동화정책은 이미 1910년대부터 시작되었지만 1930년대에 이르러 본격적이고 강력하게 실시되었다. 일제는 중일전쟁의 발발과 함께 ‘내선일체’ 정책을 본격적으로 시행하는데, 이는 조선을 완전히 일본 내지와 동화시켜 전쟁의 병참기지로 활용하기 위한 방편이었다.
일본이 제시한 국책에 따라 조선총독부에서는 내선일체의 강화를 위해 12항목에 이르는 ‘시설계획’을 제시했는데, 이는 철저하게 황국신민화를 목표로 하는 것이었다. 12항목이란 조선통치의 정신을 천명할 것, 국체관념의 명징을 도모할 것, 내선(內鮮)의 사적 관계를 천명할 것, 국민정신총동원운동의 철저를 기할 것, 교육의 보급 및 쇄신을 도모할 것, 청소년의 훈육 및 지도를 통제할 것, 근로보국대의 확충 강화를 도모할 것, 일상생활의 내선일체화를 도모할 것, 내지인의 증가를 도모하고 그 정착을 장려하는 방도를 강구할 것, 내선인의 통혼을 장려하는 적당한 처치를 강구할 것, 불교·유교·기독교 기타 유사종교로 하여금 일본 정신에 합치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 지원병제도 실시의 보급철저를 도모할 것 등이다.
황국신민화정책의 실질적 목표는 ‘징병을 통해 조선민중을 전장으로 동원하는 것과 노동력을 동원하여 군수생산력을 증강하는 것’이었다. 황국신민화정책을 구현하기 위한 국책문학의 주제 중 대표적인 것이 창씨개명과 내선결혼이었다. 일제는 일찍부터 민족동화정책을 통하여 조선민족의 말살을 기도했다. 이러한 일제의 동화정책은 ‘내선융화’의 단계를 넘어 동조동근론을 앞세워 내선일체로 이어졌고, 그 실천적 과제로 제시된 것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창씨개명과 내선결혼, 그리고 농촌, 광산, 공장 등에서의 증산과 물자통제 등이었다. 이러한 일제의 국책을 문학적으로 수용한 것이 바로 국책문학이다.
1939년 10월 ‘새로운 국민문학의 건설과 내선일체의 구현’을 목적으로 창설된 조선문인협회는 1942년 9월 5일 상임간사회를 소집하여 첫째 문단의 국어화 촉진, 둘째 문인의 일본적 단련, 셋째 작품의 국책 협력, 넷째 현지의 작가 동원 등의 실천요강을 채택하였다. 또 작품의 국책 협력으로는 일본 정신의 작품화, 도의(道義) 조선 확립의 의의 탐구, 동아(東亞) 신질서 건설의 인식 철저, 징병제의 취지 철저를 내걸었으며, 선내(鮮內) 증산운동의 현지 조사와 북남지(北南支)의 전지(戰地) 탐방, 만주개척 시찰 등을 중점시책으로 제시하였다. 이러한 시대적 요청은 작가에게 국책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선전하는 문학을 강요하게 되었다.
국책문학은 연구자에 따라 친일문학(임종국, 김재용), 국책문학(조진기), 생산문학(서영인, 이경재), 국민문학(정선태, 고봉준) 등으로 불리어진다. 김재용은 “대동아공영권의 전쟁 동원과 내선일체의 황국신민화를 글에 담아내면서 선전한 문학이 바로 친일문학”이라고 규정하였고, 조진기는 “전시하 국책에 따라 창작된 농민문학, 대륙문학, 생산문학, 해양문학 등을 일괄”하여 국책문학이라고 규정하였다. 서영인은 “전시체제하의 강력한 통제와 전쟁 동원의 국책에 문학이 적극적으로 부응해야 한다는 요구에 의해 창안된 문학”이 바로 생산문학이라고 했으며, 정선태는 “조선인과 일본인을 합체하여 새로운 ‘국민상’을 창안하고자 했던 ‘국민’의 ‘재’국민화 프로젝트”가 국민문학이라고 규정하였다. 넓은 범주에서 친일문학에 포함되는 이 용어들은 각각 논자나 매체(『국민문학』) 혹은 생산현장이라는 소재적 차원에서 구체화한 것으로, 한결같이 1940년대 초반 일제가 내건 국책을 문학에 실천적으로 반영하고 있다는 점에서 공통적이다.
1930년대 후반까지 문단의 두 축이었던 『인문평론』과 『문장』이 폐간된 뒤 ‘반도 유일의 문학지’로 군림하는 『국민문학』의 창간(1941.11)과 함께 문학은 ‘국민화=황국신민화’를 위한 선전·선동에 동원된다. 『국민문학』의 주간 최재서는 “일본 정신에 의해 통일된 동서문화의 종합을 기반으로 하여 새롭게 비약하려고 하는 일본 국민의 이상을 노래하는 대표적인 문학”(「國民文學の要件」,『國民文學』1941.5)이라고 국민문학을 규정지었다. 그는 앞서 발표한 『인문평론』의 권두언에서 “국책이란 국가가 국민생활을 보호하여 가면서 국가 자체의 이상을 실현시키는 지도 정신”이므로, 국민문학은 “일시적으로 국책에 편승한 문학이거나 영합하는 문학”(1940.4)이라고 규정한 바 있다.
최재서는 국책의 문학적 수용을 위해 개별 작가의 반성을 촉구하는 동시에 “몇 가지 강령이나 목표를 곧바로 문학적으로 번역하는 구체성이나 실천성을 가진 지도이론을 마련”(「朝鮮文壇の再出發を語る」, 『國民文學』1941.11)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문제는 국책에의 협력이라는 당위적 요구를 어떻게 구체적으로 형상화해 낼 것인가, 다시 말해 작가가 시국적 요구와 당대의 리얼리티를 어떻게 유기적으로 파악하고 이해할 수 있느냐이다. 국책문학이 정치적 이유로 권장되었지만 실질적인 문학적 성과가 풍부하지 않았다는 점, 그리고 그 속에 숱한 모순과 균열을 포함할 수밖에 없는 것도 이같은 연유이다.
국책문학으로 평가되는 대표적인 작품들은 김재용·김미란이 편역한 『식민주의와 협력』(역락, 2003)에 실려 있는데, 이광수의 「대동아」(『綠旗』1943.12), 최정희의 「환영 속의 병사」(『綠旗』1942.4), 정인택의 「껍질」(『綠旗』1942.1), 이석훈의 「北の族」(『국민문학』1943.6) 등을 꼽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