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고려 후기 문란해진 제영부(諸領府)의 군사제도를 개선하기 위해 설치한 임시 관부.
내용
고려 후기에 군인은 심한 천역(賤役)을 담당하기도 했고, 군인전(軍人田)을 권세가에게 탈점당하고 군역을 피해 도망치는 자가 많았다. 이 때문에 문무산직(文武散職), 백정(白丁), 잡색(雜色) 등 귀천을 막론하고, 다방면으로 군대를 조발(調發)하고자 하였으나 군액(軍額)을 채우지 못했다. 고려 말에 왜구의 침입을 비롯한 국토를 방어해야 할 곳은 많아지고, 군대는 부족하여 그 수를 확충할 필요가 있었다. 군인의 처우를 개선하고 기존의 제영부를 보완, 개선하기 위해 제영부완호도감을 설치한 것이라 여겨진다.
1345년(충목왕 1)에 권세가들이 녹과전(祿科田)을 탈취하였을 때 제영부가 가장 많은 피해를 당하여 왕후(王煦)가 왕명으로 이를 회수하였다고 한다. 이를 통해 제영부에 녹과전이 지급되었음을 알 수 있다. 녹과전 지급은 문란해진 토지제도를 바로잡아 제영부의 재원을 확보해보려는 개혁의 의지가 담겨 있었다. 이후 제영부완호도감은 충목왕때 폐지되었다.
참고문헌
- 『고려사(高麗史)』
-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 『동사강목(東史綱目)』
- 『고려사 백관지 역주』(박용운, 신서원, 2009)
- 『역주 고려사 백관지』(최정환, 경인문화사, 2006)
- 「고려시대 도감의 구조와 기능」(이정훈,『한국사의 구조와 전개-하현강교수정년기념논총-』,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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